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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첫날, 대성통곡

2부(진짜이민)

by 김미현


캄캄한 독일의 아침 7시 10분.

아들은 작은 어깨에 책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섰다. 나는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아이의 뒷모습은 작고도 멀었다.

버스가 다가오자 아들이 발을 내디뎠다.

나는 그 순간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잘할 수 있을까? 아니야, 힘들 거야… 그래도 애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했지….’


억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발끝까지 무겁게 젖어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먹고살아야 했다.

예약된 한국 고객들과 상담을 이어갔다. 나는 상담사다.


말을 건네면서도 눈은 시계에만 꽂혀 있었다.


“10시네… 수학 시간일까.”

“12시, 지금쯤 점심을 먹고 있겠지.”

“3시, 이제 마지막 시간이겠네.”


시곗바늘이 움직일 때마다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낳았다.

그 교실 안에서 아이가 어떤 얼굴로 앉아 있을지, 자꾸만 그려졌다.




“저기… 우리 애를 데리러 가야 하지 않을까? “

나는 결국 불안을 참지 못하고 K에게 물었다.


K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 여긴 독일이야. 아이들은 혼자 다녀. 버스, 전철, 자전거 타고. 다 스스로 배우는 거야. “


“아직 겨우 열두 살인데…“


“그래서 배우는 거야. 기회를 줘야지. “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엄마인데… 왜 이렇게 무력하지?’


독일에서 운전하는 것도 두려웠다.

무엇보다, 이미 위임장에 서명한 사실이 떠올랐다.

혹여라도 내가 없을 때 아이의 보호자가 K가 되도록 약속한 그 서류.


그날따라 종이 한 장이 나를 꽁꽁 묶어놓은 밧줄처럼 느껴졌다.


나는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내가 했을 일들을, 이곳에서는 전혀 할 수 없었다.

은행도, 학교 연락도, 작은 서류 하나도 K를 통해야 했다.

그놈의 언어 때문이었다.


K가 앞장서서 우리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고마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동시에 화가 났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K를 의지해야만 한다는 현실이 나를 더 옥죄었다.


‘이렇게까지 도와주는데, 내가 왜 화가 나는 거지? 배은망덕한 거 아닐까?’

죄책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어른인 나도 이런데,

아들은 얼마나 더 서러웠을까.




저녁 다섯 시 무렵, 아이가 돌아왔다.

현관을 닫자마자 곧장 방으로 올라가더니 문을 쾅 닫았다.


곧, 집 안이 흔들릴 만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얼어붙었다.

K도 말이 없었다.


울음은 날카롭게 끊겼다가 다시 터졌다.

주먹으로 책상을 치는 소리, 발로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 방 안에서 아이가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방문 앞에 서서 손끝만 꼼지락거렸다.

노크도, 위로의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괜찮아’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엄마라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현실이 나를 질식시켰다.


K가 조심스레 방문을 열려 하자, 아이의 눈빛이 번쩍 나를 향했다.

나는 그 눈빛을 단번에 읽었다.


‘엄마… K 나가라고 해. 나 불편해.’


“미안해, K. 잠시만 비켜줄래?”

K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곧 물러섰다.


나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힘들었구나… 그래, 힘들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거야.”


아이는 내 품에서 더 크게 울었다.

옷깃이 흠뻑 젖었다.

나는 그 울음을 다 받아내듯, 팔에 힘을 주어 안았다.


잠시 후, 물을 건네자 아이가 겨우 말을 뱉었다.

“하나도 모르겠어… 선생님이 뭐라고 하는데, 그냥 소리만 들려.

다른 애들은 다 웃고 대답하는데, 나만 멍청이처럼 앉아 있었어.

나만 아무것도 몰라.”


나는 단숨에 숨이 막혔다.

목이 메어, 대답 대신 그의 등을 두드렸다.


“괜찮아”라는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랬구나… 어땠을지 알 것 같아.”

겨우 나온 말은 그것뿐이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속내가 튀어나왔다.

“이렇게 힘든데… 우리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까?”


내 목소리는 속삭임처럼 떨렸다.

정말 이게 최선일까, 아무 대책도 없다는 자책이 쏟아졌다.


그 순간, 아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물이 흐르는 얼굴에 공포가 번졌다.

마치 ‘엄마, 제발 그 말은 하지 마’ 하고 외치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니야!”

목소리는 떨렸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내가 힘들어도… 나 여기서 할 거야.

한국으로 가면… 난 더 싫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손끝이 저리도록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래… 알았어. 미안해.”

내 목소리는 갈라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등을 쓰다듬는 것뿐이었다.


그날 밤, 아이는 울다 지쳐 잠들었다.

불 꺼진 방을 보고도 한참을, 나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아들의 울음은 멎었지만, 그 눈빛은 내 안에서 계속 울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나는 더 혼란스러웠다.



#학교첫날 #엄마의 기록 #해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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