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진짜이민)
아침부터 모두가 긴장했다.
집 정리나 장보기는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지만, 학교는 달랐다.
아이가 앞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 할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멀리서도 학교는 성처럼 보였다.
붉은 지붕과 노란 벽, 무겁게 닫힌 아치형 문.
문 앞에 서 있던 순간의 긴장감이 아직도 선하다.
시간이 되자 학년 주임 선생님이 문을 열고 나왔다.
다행히 그분은 영어 선생님이셨다.
밝은 웃음과 함께 내민 악수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인터뷰가 시작됐다.
“좋아하는 게 뭐니? “
나는 속으로 ‘게임이라고 하겠지’ 했다.
그러나 아이는 뜻밖에도,
“음악이요. 클래식이요. “
악기 선택에서도 흔히 고른다는 클라리넷 대신, 또렷하게 말했다.
“플루트요. “
낯선 자리에서도 자기만의 선택을 하는 모습이었다.
잠시 후 아이는 교실 체험에 들어갔고, 우리는 복도에서 기다렸다.
40분쯤 지나 문이 열렸다.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창가 쪽 책상에 앉아 있었다.
우리를 보자 환하게 웃는 표정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곧 눈에 들어온 건 다른 모습이었다.
그 웃음 뒤로 눈을 지나치게 자주 깜빡였다.
처음 보는 낯선 불안의 신호. 그 순간, 내 심장도 쿵 내려앉았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은 “오늘 잘 해냈다”며 칭찬했다.
아이도 반 아이들이 착하다며 기뻐했다.
긴장이 풀린 듯 보였고, 우리는 잠시 안심했다.
저녁, 모두 함께 첫날을 축하했다.
그런데 식탁에서 아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애들이 내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아. 내 발음이 이상해?”
“그 아이들도 영어는 외국어야.
어째서 모두 잘할 거라고 생각해?”
소용없었다.
그 물음에는 위로나 칭찬이 아니라, 해결책을 향한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사실 이 아이는 어릴 적부터 언어에 남다른 감각을 보였다.
네 돌도 안 돼 기저귀를 찬 채 내가 읽던 책을 또박또박 읽어주던 순간이 있었다.
그때도 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건 막막함이었다.
‘이 아이를 어떻게 도와야 하지?’
오늘 밤에도 같은 질문이 내 안에서 반복됐다.
낯선 언어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가려 애쓰는 아이.
나는 또다시 부모로서의 숙제를 떠안았다.
아이가 가진 힘을 잃지 않도록,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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