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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눈물 너머의 웃음

2부(진짜이민)

by 김미현


한 번 터진 눈물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다시 보지 못할 것도 아닌데, 오래 돌아오지 못할 걸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아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었다.


“좋아?”

“……”


눈이 퉁퉁 부은 엄마를 보며,

아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저 서로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제야 억지로 웃어 보였다.




공항에 도착하니 K가 마중 나와 있었다.


밤 8시가 되어서야,

비디오로만 보던 그 집에 도착했다.


가짜이민은 늦여름이었고,

이번엔 1월의 겨울이었다.


문을 열자 천장에는 알전구 몇 개만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고,

벽마다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독일 집은 조명도 직접 달아야 한다는 걸,

그때 다시 한번 실감했다.





현관 옆에는 게스트 화장실.

그 뒤로는 주방이 이어졌다.


주방을 지나니 널찍한 거실이 나타났다.

두 면을 가득 채운 유리문 너머로는

어둠이 내려앉은 발코니가 이어졌다.


낮에는 햇살이 가득 들어올 공간이,

밤에는 오히려 집 안을 더 크게 보이게 했다.




계단을 올라간 2층은 우리 모자(母子)의 공간이 되었다.

방 두 개와 욕실.


아직 가구 하나 없는 빈 방에 들어서자,

목소리가 벽에 부딪혀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왜 1층엔 방이 없을까.”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원래 싫은데,

2층까지가 나의 마지노선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라간 3층.

집에서 가장 넓은 방,

발코니까지 딸린 그곳은 K의 차지가 되었다.


방 배치는 한순간에 정해졌다.


굳이 다툴 이유도,

양보할 이유도 없었다.


마치 치킨을 먹을 때

한쪽은 닭다리만,

다른 쪽은 퍽퍽 살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난 것처럼 말이다.




지하에는 세탁실이 있었다.

바구니를 들고 그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낯선 생활의 무게가 조금 더 실감 났다.


한국의 집과는 너무도 다른 구조.


외국살이의 낯섦은 이렇게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하나하나 시작되고 있었다.




이렇게 큰 집에서 살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K의 말에 따르면,

이런 집에 사는 건 많은 독일인들의 꿈이라고 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외국에서,

그것도 월세로 살아간다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현실의 무게가 불쑥 들려왔다.

비싸고, 비싸고, 비싸다.


그럼에도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살아보자고 마음먹었다.

길게는 살 수 없을지 몰라도,

이 얼마나 근사한 경험인가 싶었다.




그 순간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 한복판에 앉아,

흐뭇한 얼굴로 내내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날 밤,

아들과 나는 슈퍼싱글 침대 하나에 나란히 누워야 했다.


피곤을 못 이긴 나는 먼저 기절하듯 잠들었는데,

아들은 자정까지 거실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K가 말하기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고 했다.


내내 행복한 얼굴로

유리창 너머 정원을 보고 또 보더란다.


가지 위에 조금씩 남아 있던 눈,

가로등 불빛에 드리운 그림자,

바람에 살짝 흔들리던 담장 옆 덩굴까지.


아이는 그 모든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마치 오래전부터 자기 집인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한다.


“I like our home.”

(우리 집 마음에 들어.)

아들이 말했다고 한다.


“Oh! Sounds good.

I like it too.”

(오. 좋은데? 나도 그래.)


둘은 밤늦도록 함께

그 집과 친해져 가는 중이었다.



#해외살이 #삶의 전환점 #독일이민 #이민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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