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진짜이민)
쓰라린 실패 끝에, 집에서 거리가 있는 학교에서 아들을 받겠다고 했다.
K는 그 소식을 전하며 또 울고 있었다.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대상포진이 등을 태우듯 파고들고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아이의 길을 위해 다시 움직여야 했다.
짐을 싸고, 공증 서류를 챙기고, 남편과 함께 체크리스트를 줄줄이 지워나가던 그 무렵,
내 앞에 가장 무겁게 놓인 건 한 장의 종이였다.
위임장.
독일에서는 미성년자가 혼자 유학할 수 없다.
부모가 동반하지 않으면, 반드시 현지 성인에게 위임장을 써야만 학교에 다닐 수 있다.
즉, 아이의 체류 자격은 부모의 체류 자격에 달려 있었다. 내가 비자를 잃으면, 아이 역시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된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실패하면, 아이의 삶도 함께 무너진다는 사실을.
1년 뒤, 나는 대학에 들어가야 했다.
그것이 아이의 비자를 연장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영어를 공부해 본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외국어를 단 1년 만에 대학 입학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내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
내가 무너지는 순간, 아이도 함께 무너진다는 사실.
사람들은 쉽게 말했다.
“너는 영어도 잘하잖아. 독일어도 금방 할 거야.”
나는 그 말이 위로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화가 치밀었다.
그들은 모른다.
해보지 않았으니까.
내가 매일같이 어떤 불안 위에 서 있는지,
내가 실패하면 아이의 길까지 막힌다는 사실을.
위임장을 작성하는 순간, 손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펜은 자꾸 미끄러졌다. 글씨가 비뚤어져 도중에 종이를 찢어 버렸다.
다시, 또다시.
몇 번이나 서류를 작성하다 실패했다. 글자를 쓰다 손이 굳고, 눈앞이 흐려졌다. 잉크가 번진 자리마다 내 불안이 얼룩처럼 남았다.
결국 K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내려가면서도, 손이 떨려 글자가 제멋대로 흔들렸다.
그건 단순한 서명이 아니었다.
내가 내 아이를 지켜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인정.
그리고 그 불안을 타인에게 넘겨야 하는 절박한 선택.
외교부 아포스티유 창구.
서류를 받아 든 직원이 한참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위임장을 왜 쓰시나요?”
“아이 때문에요. 독일에서 공부하고 싶어 해서요.”
“몇 살인데요?”
“열두 살이에요.”
직원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웃음기 없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표정이었다.
“처음 보네요. 열두 살 아이가 직접 독일에 가고 싶어 해서 이렇게 서류를 작성하는 경우는.”
그 말은 오래도록 내 귀에 남았다.
우리가 가려는 길이 얼마나 낯설고,
얼마나 드문 길인지
그 말 한마디가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출국 당일, 공항에 시부모님이 나오셨다.
담담히 웃으려 했지만, 시아버지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눈물도 터졌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떠남은 결국 눈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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