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학년 쓰실 거예요?

by 윤아 선생님

겨울방학이 끝나고 돌아오면 학교는 뒤숭숭한 분위기가 된다. 아이들은 곧 새 학년이 된다고 들뜬 마음과 친해진 친구들과 헤어져서 서운해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아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내년에 누구와 같은 반이 되는가일 것이다. '제발 반배치가 잘 되게 해 주세요.' 누구에게 비는 건지 모르겠지만 간절하게 기도하기도 한다. 어린이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우리 내년에도 같은 반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하는 아이들은 다른 반이 될 것이고 '쟤랑은 같은 반이 안 됐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애들과는 같은 반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반 배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이 인생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이 시기에는 선생님들도 간절히 빈다. 다음 해에 몇 학년을 담임할 것인지 희망서를 제출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희망서를 쓴다고 해서 원하는 학년을 담임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희망서를 쓰는 일에 아주 신중해진다. 한순간의 결정에 따라 어느 누군가는 지옥 같은 1년을 보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때이므로 어떤 선생님이든 눈만 마주치면 몇 학년을 써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서로 가진 정보를 나눠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점심을 먹고 양치를 하러 가다가 올해 5학년을 담임하시는 선생님 두 분을 만났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선생님들은 아니었지만 윤아는 반갑게 달려갔다.

"선생님, 내년에 몇 학년 쓰실지 결정하셨어요?"

성격이 급한 윤아는 인사말도 없이 본론부터 물었다. 한 선생님이 내년에 6학년은 절대 쓰지 말라고 했다. 2020년에 코로나 시작과 함께 입학한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기초 학습이 부족한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읽기, 쓰기, 셈하기 같은 기초 학습 능력이 부족하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수학은 더하기 빼기를 못하기 시작하면 그 후로 곱하기 나누기도 못하고 그러다 보면 분수도 싫고 도형의 넓인지 뭔지 될 대로 되라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게다가 6학년이지 않은가. 수학을 곧잘 하던 아이들도 원의 넓이나 분수의 나눗셈을 배울 때 동태눈이 되던 것이 생각났다. 아직 구구단도 못 외우는 아이가 있다는데 그 아이에게 원주율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윤아는 자신이 없었다.

옆에 계시던 선생님이 5학년도 쓰면 안 된다고 했다.

"저 5학년 쓰려고 했는데, 5학년은 왜요?"

덩치도 큰 애들이 한 반에 27명씩 있다고 했다. 27명이면 한 반은 더 만들어 주지 않아요? 했더니 딱 1명이 모자라다고 했다. 27이라는 숫자는 전혀 아름답지 않은 숫자다. 2명씩 짝을 만들면 꼭 1명이 남고 모둠을 만들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학생 수가 많아서 별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쓰면 안 될 이유까지는 아닌 거 같은데. 더 들어보니 학교 폭력 신고 건수가 제일 많은 학년이었다고 한다. 작은 교실에 그렇게 많은 애들을 몰아넣었으니 당연히 크고 작은 다툼이 많았을 거다. 싸우기만 하면 학교폭력 신고한다는 애들 때문에 골치가 좀 아플 거라고 했다.

지금까지 5, 6학년만 고집하던 윤아였지만 올해는 선택지를 넓혀야 할 필요가 있겠다.

"그럼 4학년은요?"

말도 말라는 듯 고개를 젓더니 한숨까지 쉰다. 4학년은 아주 유명하다고 했다. 4학년에 거의 매일 학교에 전화하는 학부모가 있다고 했다. 작년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 가서 병가 쓰겠다면서 울지 않았었나? 아니야 그건 2년 전이고 작년에는 3월에 휴직 써서 기간제 선생님이 바로 왔었잖아 하는 대화를 들으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윤아는 어지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K를 찾아갔다. K는 윤아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로 1학년 담임을 하고 있다. 윤아는 1학년이라면 진저리를 쳤지만 차분하고 나긋한 K는 1학년 담임을 꽤 잘 해내는 중이었다.

"K선생님! 제가 아까 5학년 선생님들한테 들은 얘긴데 이번에 4,5, 6학년 다 쓰면 안 된대요! 4학년은 프로 민원러 있고 5학년은 학폭 신고 많고 6학년은 기초 부진 많대요!"

K는 조용히 윤아의 이야기를 듣더니 말했다.

"윤아 선생님, 제 생각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거 같아요."

"네? 그럼 뭐가 중요해요?"

"중요한 건 우리가 동학년을 해야 한다는 거죠."


윤아가 학교를 옮겨 지금의 학교로 왔을 때 전입 교사들이 인사하는 자리에서 처음 K를 만났다. K는 조용하고 느리게 자기를 소개했었다. 복도에서 지나가다 만나면 안녕하세요 인사만 하던 사이였던 둘은 2023년 여름 방학에 서울로 가는 집회 버스에서 자주 만나면서 친해졌다. 집회 날 아침, 혼자 버스에 앉아있던 윤아는 버스에 올라타는 K가 너무나 반가웠다. 그날부터 윤아와 K는 서로에게 집회 단짝이 되어주었다. 한 목소리를 낼 동료가 있다는 연대감에 한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매주 나갈 수 있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서도 윤아와 K는 자주 서로를 찾았다. 고민되는 일이 있을 때도 찾아가고 좋은 소식이 있을 때도 찾아가 알렸다. 그래서 지금 이 중요한 순간에도 윤아는 K를 찾은 것이다.


"오! 동학년!"

윤아는 또 다른 선택지의 등장에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동학년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소문이 안 좋은 학년을 써야 해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제 발로 지옥불 속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니! 윤아는 다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윤아는 생각보다 쉽게 결정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때려치우지 않은 이유는 같이 화내주고 위로해 주는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니까.

"좋아요. 우리 그럼 4학년으로 써요!"

윤아와 K는 비장한 표정으로 교실로 돌아갔다. 윤아는 떨리는 마음으로 1 지망에 4학년을 썼다. 4라는 숫자가 주는 불길함에 '이게 잘하는 짓인가' 잠시 고민했지만 곧 저장 버튼을 눌렀다. 괜찮다. K와 함께라면 지옥불에서 무사히 걸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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