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3:불과 재> 람후감 실망 편

by 아포드

#스포 있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하악질을 날리는 귀여운 고양잇과 부족인 나비족의 3번째 이야기가 개봉했다. 무려 197분의 러닝 타임이라는 소식을 듣고 마치 건강검진이라도 가는 것처럼 관람 전에 속을 비우고 금식하며 극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실망했다. 이번 관람기는 실망 편이니 만큼 실망한 점들에 대해서 적어 보도록 하겠다.


주인공이 없다

오락/가족영화는 서사가 쉽고 단순하기 때문에 그저 마음 놓고 이야기를 믿고 따라갈만한 믿음직한 주인공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아바타 3에서는 관객들이 기댈만한 주인공이 없다. 멋진 토르크막토였던 설리는 이제 멋진 건 관두고 가부장적인 꼰대가 되려 하고 네이티리는 첫째 아들을 잃고 축 처져서 기운이 없다. 둘째 아들 로아크는 딱히 활약이 없고, 양아들 스파이더는 자꾸 납치만 당하는 애물단지, 양딸 키리는 아바타 세계관의 신 에이와를 등에 업고도 존재감을 연출하지 못했다.


빌런 진영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1,2편에 이어 이번에도 메인 빌런을 담당하게 된 쿼리치 대령은 빌런으로서의 확고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설리와 싸울까 말까 친해질까 말까 어중간한 태도를 보여주고 사실상 3편의 중심이 되었어야 할 망콴족은 소소한 잔당 정도의 느낌으로 묘사됐다.


그냥 다들 조연인 채로 할 이야기들은 많고 그걸 최소한 말이 되게 서로를 엮으려다가 큰 줄기를 놓친 것 같다.



잘못된 성분 표기

아바타 3의 부제는 '불과 재'이다. 제목만 들어서는 2편에서 물을 다뤘으니 3편에서는 불을 다루겠구나 하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화산지대를 배경으로 불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적들과 싸우는 모습도 상상할 법하다. 그러나 이번에도 2와 같은 배경을 채용했다. 여전히 설리 가족들은 물의 부족에 얹혀살면서 서로 티격태격하고 고래를 닮은 거대 바다 생물인 툴쿤도 재탕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이번 시리즈도 물을 배경으로 한다.


물론 부제는 척박한 화산지대에서 살아남은 망콴족의 이미지를 표방한 것이겠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망콴족 서사에 담긴 불과 재의 미미한 함량으로는 물의 존재감을 증발시키는데 역부족이었다.



감탄은 있을 수 있어도 감동은 없다

잠시 게임 이야기를 하자면 게임계에는 '게임은 그래픽으로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즉 화려한 그래픽으로 잠시 대중의 눈길을 끌 수는 있지만 본질에 충실하지 않으면 결국 좋은 게임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영화도 최신 CG 기술과 촬영기법으로 뛰어난 시각적 효과를 줄 수 있지만 그것은 감동보다는 논리적인 감탄을 담당한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동이나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은 이야기와 연출이다. 즉 논리를 거치지 않고 관객의 가슴에 직접 닿아 공명 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싱거운 클라이맥스

이런 영화의 클라이맥스라면 아무리 차가운 가슴을 가진 관객이라 할지라도 뜨겁게 달궈낼 수 있어야 한다. 겉으론 티 내지 않아도 속으로는 '내가 이런 유치한 영화 앞에서 가슴이 뛰다니!'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아바타 3에서는 설리가 다시 토르크막토가 되기로 결심한 부분 그리고 키리가 아바타 세계관의 신 에이와와 연결되는 장면이 클라이맥스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저 두 지점은 안타깝게도 전혀 폭발적이지 않았다. 먼저 토르크막토의 재림을 살펴보자면 설리가 더 이상 그것을 절대 타지 않겠다는 명분이 너무 쉽게 무너진다. 이런 경우에는 관객들을 납득시킬만한 명분과 이야기에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설리는 토르크가 사는 동굴에 찾아가서 '응 나 왔어.~" 하는 식으로 손쉽게 주차장에서 차를 빼오듯 다시 토르크막토가 된다. 이러면 관객들은 '그럴 거면 진작 타지."같은 불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포만감 있는 액션신을 보여줬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토르크는 적군의 비행기 몇 대를 부수고는 여기저기 화살을 맞은 모습으로 추락한다.


다음은 키리가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에이와의 힘을 빌리는 장면이다. 키리 혼자서는 에이와에게 다가갈 수 없어 가족들이 하나둘씩 순차적으로 나타나 힘을 보태며 감동을 쌓아가는 빌드 업은 좋았다. 그리고 서로 힘을 합쳐 에이와에게 다가가고 에이와의 거대한 얼굴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장면까지도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에이와가 힘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신은 바다에서 오징어 부대를 그리고 하늘에서는 이크란(나비족이 평소에 타고 다니는 익룡) 부대를 조촐하게 보내준다. 어쨌든 그것들 때문에 전세를 뒤집긴 하지만 카타르시스를 전혀 주지 못했다.


그렇게 힘들게 불러낸 신의 힘이야말로 영상 기술을 집약한 연출로써 보여줘야 했다. 이 장면만큼은 관객들의 입이 벌어질 정도로 압도했어야 했다. 오징어와 이크란 부대를 보면서 이건 시작에 불과하고 뭔가 큰 것을 보여주겠지 하고 기대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희망 사항이었다. 그리고 영화의 정점은 그렇게 앙상하게 마무리 됐다.





09년에 첫 선보였던 영화 아바타는 다소 진부할 수 있는 스토리의 뼈대에 새로운 세계관과 최고의 촬영 기술을 접목시켜 같은 이야기도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거기에 이상적인 기승전결까지 더해져 충실한 오락영화 한 편이 완성됐다.


그러나 화려한 CG 기술의 대명사 자리를 계속해서 지키고 싶었던 이 시리즈는 영화보다는 놀이공원에 있는 어트랙션이 되고 말았다. 어트랙션은 타는 중에 사람들을 비명과 열광으로 몰아넣지만 내리고 나서 감동과 여운을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 영화와 다른 점이다.


단순 자극을 추구하는 분야는 반복해서 겪을수록 빠르게 무뎌진다. 가전제품 매장에 전시된 8K 화질의 TV에서 나오고 있는 극도로 화려한 프로모션 영상을 보고 감탄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굳이 그 영상을 또 보고 싶다거나 소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서적 감동이 없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OTT 시대에도 '극장'이 여전히 존재해야 할 이유를 보여주고자 했지만 '영화'가 여전히 존재해야 할 이유에 대해선 소홀하고 말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