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일기
여름을 향해가던 6월의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쓸고 닦으며 카페 오픈 준비로 한창인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청소를 마무리하고 걸레를 빨고 있을 때쯤 가게에 누군가 들어서는 기척을 느낀다.
"어서 오세요~"
싱크대에서 손을 씻으며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보자 회색 중절모에 칼같이 다림질 한 흰 셔츠와 베이지색 바지 그리고 번쩍번쩍 광나는 검은 구두를 신은 노신사 한 분이 있었다. 노신사는 지팡이를 짚고 느릿느릿 걸어오더니 카운터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지팡이를 걸친다.
"뭘로 드릴까요?"
"거 뭐 우유 이래 들어가 맛있는 것 좀 없노?"
"카페라떼로 드려볼까요?"
"그래 함 무 보자."
카페라떼를 준비하며 노신사를 힐끔 바라본다. 그는 중절모를 벗어 테이블 위에 살포시 얹어 놓더니 카운터 옆에 있는 티슈를 집어 자신의 빛나는 정수리를 열심히 닦는다. 그렇게 정수리를 한참 닦더니 이번에는 허리를 숙여 이미 집에서 잔뜩 광을 내온 것 같은 구두를 또 한참을 닦는다.
"카페라떼 나왔습니다."
노신사는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주방으로 고개를 돌린다.
"좀 달았으믄 싶은데."
"시럽은 여기 있습니다."
"요거 말고 설탕은 없나?"
가게에서 직접 설탕을 정성스레 녹여 만든 시럽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려다 그냥 설탕을 내놓는 것이 빠를 것이라 생각한 나는 주방에서 하얀 설탕과 티스푼을 꺼내 건넨다.
그리고 시간이 5분쯤 흘렀을까?
"여는 뭐 씹을 것도 안주나?"
이번 요구는 조금 당황스럽다. 디저트를 별도로 주문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달라는 것이었다. 잠깐 생각 끝에 쿠키 몇 개를 내놓는다.
없는 매출인 셈 치고 오랜 세월을 살아낸 그에게 잠깐의 휴식처를 제공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노신사는 이 가게의 단골이 되었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가게에 도착했으며 같은 시간에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오후 4시경이 되면 어딘가에 들렀다가 집으로 되돌아가는 노신사의 모습이 가게 창가를 통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매일같이 가게를 찾아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몇 가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그가 가게에 도착한 후에 치러지는 그만의 루틴 속에서 발견되는 것들이었는데 일단 그의 정수리와 구두를 광내는데 너무 많은 티슈가 소모된다는 사실이었다. 대체 왜 이미 깨끗한 곳들을 그리 열심히 닦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매일같이 보다 보니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그것만으로 이미 상당한 티슈를 소모하는데 추가로 또 티슈를 한 움큼 쥐어서 자기 가방에 챙겨 넣었다.
대접해 내놓아야 할 것들은 너무 많기도 했다. 일반 손님들에게는 주문한 커피나 차 한잔만 서빙하면 그만이었지만 이 노신사에게는 뜨거운 물 한 잔, 카페라떼 한 잔, 설탕 접시, 티스푼, 서비스 쿠키까지 트레이 하나가 가득 차도록 서빙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나마 그것들을 깨끗하게 마시고 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이미 커피 잔에 담갔던 티스푼을 다시 설탕 그릇에 집어넣어서 담긴 설탕을 통째로 못쓰게 만드는 일도 허다했고 요구한 물은 마시지도 않는 날이 더 많아서 엎질러지곤 했다.
때로는 주방에서 점원들과 간식을 먹고 있으면 어느새 돌아보면서
"니들만 묵나?"
하며 당당히 본인의 몫을 요구하니 그것 또한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여기까지는 좋다. 길거리에 서있는 가게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 중 하나로 칠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는 볼펜, 가위 기타 등등의 가게 물건을 잠깐 빌려 쓰는 척하면서 몰래 가방에 넣고 집으로 가져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며 그에게 아침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는 나의 의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흐르던 수개월 속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볼일이 있어 평소보다 늦게 가게로 향하고 있던 나에게 점원이 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사장님 어쩌죠? 매일 아침에 오는 할아버님이 의자에 앉은 채 볼일을 보고 말았어요!"
가게에 도착해 보니 노신사는 온데간데없었지만 가게는 외양간 냄새로 가득했다. 소변도 아니고 대변이었던 것이다. 곧 손님들이 몰려올 점심시간인데 가게는 난장판이 되었고 우리들은 그가 앉았던 테이블과 의자를 밖으로 치우고 가게를 정리하는데 진땀을 빼야 했다.
노신사는 그 이후에도 가게를 계속 찾았지만 미안하다는 한마디의 사과도 없었다. 고령의 나이에 밖에서 변실금으로 인한 실수는 물론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슬펐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슬픈 실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다소 실망하고 말았다. 현재 그의 미안한 기색 하나 없는 그의 모습은 그의 의지와 상관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많은 나이에서 오는 가장 큰 장점은 '헤아림'이라고 생각한다. 젊어서는 미처 닿지 못하던 부분까지 헤아려내고 그 모습에서 엿보이는 지혜는 자연스레 주변의 존경으로도 이어지게 한다.
그간 내가 불편을 느꼈던 이유는 그의 헤아림이 주변에 울림을 전하기는커녕 바로 앞에 놓인 티슈에도, 설탕에도, 쿠키 조각에도 닿지 못했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카페라떼 한 잔에 매번 쿠키까지 제공하면 오히려 금전적으로는 손해이지만 나름의 보람된 그 행위에서 얻어지는 의미로 손해를 채워 넣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손해를 채워 넣을 만큼의 의미가 내 안에서 발행되지 않게 되었고 나는 그에게 더 이상의 쿠키 서비스를 내 올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노신사는 기분이 상했는지 어느 날부터인가는 더 이상 가게를 찾지 않았다.
-에필로그-
"사장님! 여기 맨날 아침에 오시는 할아버지 있죠?"
건물주가 가게 문을 열고 다급하게 외친다.
"네 요즘은 안 오십니다만 왜 그러시죠?"
"아우! 그분이 건물 안을 지나가시면서 실례를 하셨는지 복도를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 놓으셨어!"
...
가게를 더 이상 찾지는 않지만 그의 산책로에 대한 고집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