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를 하는 중에 "여긴 어떻게 잘라드릴까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으면 다소 난감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왜냐하면 거울 속의 내 머리는 이미 분무기와 집개의 개입으로 이상한 모양이 돼버린 상태라 그걸 기반으로 설명을 하고 있자면 미용사가 과연 내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스타일과 길이 등에 대한 요구를 표현하는 것을 상당히 번거로워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다니던 미용실을 계속 다니며 미용사가 부디 지난번의 내 머리를 기억하고 적당히 잘 잘라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한 미용실을 15년 가까이 다녔다. 그 미용실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라기보다는 위와 같은 관성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오래 다니다 보니 그냥 의자에 앉기만 하면 달리 특정 요구를 하지 않아도 적당히 익숙한 스타일로 잘라줘서 편하다..라는 게 아마 가장 큰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지역을 이동하는 바람에 더 이상 그 미용실은 다닐 수 없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묘한 곳에서 도전의식이 솟아났으니 그게 바로 셀프 컷이었다.
고민을 좀 하다가 셀프 컷 위한 도구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역시 셀프 컷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클리퍼'(바리깡)이라 할 수 있다. 옆머리와 뒷머리를 가지런히 정리하기 위해서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이 미용가위다. 집에 있는 다용도 가위로도 자를 수 있지만 날이 무뎌서 한 번에 잘리지 않고 집히거나 지저분하게 잘릴 가능성이 크다. 클리퍼만으로 삭발할 게 아니라면 역시 필요하다.
좀 더 섬세함에 욕심을 내보자 해서 숱가위도 주문했다. 커트에 관해 알아보다 보니 숱가위는 숱을 왕창 칠 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 가위로 자른 후 너무 싹둑 자른 티가 나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다듬을 때도 진가가 발휘된다고 한다.
이건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주문한 3단 거울이다. 저렴한 비지떡을 많이 파는 알리이기에 안정성에 조금 의심이 들긴 하지만 셀프 컷에 꽤 유용한 조력자로 활약할 것 같은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렇게 일단 망치면 모자를 쓰고 다닐 심산으로 클리퍼를 전원을 켠다. 위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꺼벙한 머리카락이 뭉텅이라 잘려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옆머리를 밀고 뒷머리로 향하려는데 묘하게 손목이 각도가 안 나왔다.
클리퍼 자체도 처음 사용해 보는 터라 조작감이 상당히 어색한 와중에 보이지도 않는 뒷머리에 손을 대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에 도전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거울로 뒷머리를 볼 수는 있었지만 알다시피 이런 상황에서는 거울로 보는 좌우와 실제의 좌우가 반대이므로 이 인지부조화를 처음부터 극복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 5분 정도 좌절을 느끼며 길 잃은 어린양의 심정으로 멈춰있다가 과감히 시각에 의존해서 자르는 것을 포기하고 손의 촉감을 이용해 뒷머리를 만져가며 뒷머리를 밀어 올리기 시작하는데...
뭐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진행되기 시작한다. 굉장히 더듬더듬 찾아간 초행길 치고는 행선지를 잘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능성이 엿보이자 가위들도 투입해 가며 디테일에 욕심을 내본다.
처음부터 이쯤의 결과물이면 앞으로 있을 실력 향상에 따른 퀄리티의 향상도 기대해 볼만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묘한 감동도 있었는데 돈을 아끼는 것은 표면적인 부분이고 미용실에 전화해서 예약하느라 일정을 조율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드는 번거로움을 더 이상 느낄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에서 뭔가 인생에 있어 절대 끊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속박의 줄을 하나 끊어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머리가 좀 길었다 싶으면 이래저래 생각을 굴릴 필요 없이 욕실에 들어가서 알아서 자르고 샤워하면 된다는 뜻이다.
남이 잘라준 것보다 못할 수 있지만 나보다 오래된 속담에 도전해서 얻은 결과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