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열며(삶이 보이는 창 135호 발행인 글)
두 번째 봄, 가을
사계절의 변화가 자연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을 가르치고 또 가르칩니다. 무더위와 폭우가 온 세상을 지배하던 여름세상이었는 데 언제 그랬냐는 듯 선선한 바람과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바뀐 계절을 실감합니다. 알베르 까뮈는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라고 했습니다. 설마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곳에서 살지는 않았겠지만 물드는 잎도 꽃으로 보면 가을에는 꽃이 아닌 것이 없네요. 꽃 하면 떠오르는 국악 동요 ‘모두 다 꽃이야’(류형선 작사)를 좋아해서 자주 듣곤 합니다. 가사와 음률이 너무나 가슴을 울리는 노래입니다. 옆에서 누군가 무슨 동요를 그렇게 반복해서 듣냐고 지청구를 주어도 국악 가락에 맞춘 아이들의 청아한 노래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산에 피어도 꽃이고/들에 피어도 꽃이고/길가에 피어도 꽃이고/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생긴 대로 피어도/이름 없이 피어도/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여름에 피어도 꽃이고/몰래 피어도 꽃이고/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생긴 대로 피어도/이름 없이 피어도/모두 다 꽃이야
꽃도 잎도 물드는 가을이 두 번째 봄으로 불린다니 그 의미가 새롭게 느껴지네요. 가을을 봄으로 볼 수 있는 심미안은 없지만 계절 너머 계절을 느낄 수 있다면 통찰의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두 번째 봄과 겨울을 지나면 다시 봄이 옵니다. 두 번째 봄은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고, 계절 너머 계절을 대비해서 땅을 새롭게 갈거나 거름을 주어 이듬해 ‘정지된 상태의 존재자들’인 씨앗들이 잘 발아하고 생장하기 위한 밑거름의 시작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도 새로운 시작을 위한 또 다른 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네요. 인간의 발단단계로 영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라는 인생의 4계절을 보냅니다. 작물도 씨앗을 뿌리고,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나이 들어가며 죽는 생장주기를 거칩니다. 인간의 생명주기와 식물의 생장주기가 유사한 경로를 거치는 오묘함이 있습니다. 이것을 ‘평행적 주제들’이라고 합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의 섭리라고나 할까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겪게 되는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의 자연법칙이지요. 혹한의 시기를 보내면 따뜻한 봄이 기다리고, 폭염과 폭우를 이겨내고 나면 두 번째 봄인 가을이 오니 어려운 시기도 겪어낼 만한 호흡의 여유가 생기네요. 자연의 세계와 같이 인간 세계도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면 좋은 시절이 온다는 옛 어른들의 지혜로운 말씀이 허투루 들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발상의 전환으로 4계절의 순환을 2 계절의 순환으로 옮겨보면 그나마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듯합니다. 마침 기후변화로 인해 큰 틀에서는 2 계절의 큰 흐름의 과정으로 두 번의 짧고 늘 그리운 계절이 순환하고 있으니까요.
여러분, 사는 게 힘이 드시지요?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고, 견디기 힘든 여름이 지나면 또 다른 선선한 봄이 옵니다.
우리를 에워싼 국내외 각종 정세들과 온갖 경악할 사건들이 세상을 혼잡스럽게 해도 이를 악물고 버텨내면 따뜻한 봄과 선선한 봄이 우리의 고된 심신에 쉼과 치유를 줍니다.
힘든 과제를 부여안고 몸부림치던 여름이 지나고 또 봄이 왔다는 생각으로 이 계절의 맑은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면서 이겨나갑시다. 까짓 거 겨울이 오면 어때요? 또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올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늘 마음을 강단지게 잡숫고, 때로는 심리적 소진이 오더라도 재충전하면서 ‘자기 돌봄’을 소홀히 하지 않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시기일수록 더욱더 갈망하게 되는 봄, 그 봄은 언제나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그런 여유와 강단을 가지고 이 가을, 두 번째 봄날의 삶창을 활짝 열어젖히고 자연의 온갖 향과 소리, 느낌을 가득 충전해서 세상으로 나아갈 여러분을 마음껏 응원합니다.
2023년 가을, 두 번째 봄에 발행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