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 강화
대법원 제2부(재판장 권영준 대법관, 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A씨 사건(2024도12689)에서, 원심이 피고인의 법정진술을 유죄의 증거로 인정한 부분에 대해 위법한 증거 수집에 기초한 2차적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정해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적법한 절차를 위반하여 수집한 증거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확보된 피고인의 법정진술도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위법하게 수집된 전자정보를 기초로 한 수사가 진행된 이 사건에서 유죄 증거로 인정된 법정진술의 증거능력을 부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건 개요: 피고인의 합성대마 매수 혐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피고인 A씨는 2023년 6월 3일, 지인(공소외인)의 부탁을 받고 서울 용산구 소재 아파트 전화단자함에서 합성대마 카트리지 1개를 수거한 뒤, 이를 대전 중구에 있는 공소외인의 주거지에서 전달한 혐의(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로 기소되었다.
이번 사건은 수사기관이 피고인의 공범인 공소외인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면서 확보한 텔레그램 및 카카오톡 대화내역을 바탕으로 수사가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증거능력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수사 과정에서의 위법 논란: 휴대전화 압수 및 데이터 분석
이 사건 수사는 공소외인이 분실한 휴대전화를 경찰이 습득하면서 시작되었다.
2023년 8월 7일, 공소외인이 택시에서 휴대전화를 분실했고, 택시기사가 이를 대전△△경찰서 파출소에 습득물로 제출했다.
경찰은 휴대전화 소유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저장된 데이터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필로폰 구매 정황이 담긴 텔레그램 대화내역을 발견했다.
이후 수사는 형사과로 이관되었고, 경찰은 별도의 압수수색영장 없이 휴대전화 내 텔레그램·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분석하여 증거를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공소외인을 긴급체포한 뒤, 확보된 대화 내역을 증거로 삼아 피고인 A씨를 특정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피고인은 수사 과정에서 카카오톡 대화내역이 증거로 확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이에 영향을 받아 법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공소외인의 휴대전화를 탐색하고 데이터를 복제·출력한 점이 위법한 증거 수집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법정에서 문제가 되었다.
원심 판결: 일부 증거능력 부정, 그러나 법정진술 인정
대전고등법원(원심)은 수사기관이 공소외인의 휴대전화를 영장 없이 압수하여 분석한 과정이 위법하다고 판단하고, 해당 전자정보(텔레그램·카카오톡 대화내역)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심은 피고인의 법정진술과 공소외인의 관련 사건 법정진술은 별도로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즉, 카카오톡 대화내역 자체는 위법한 증거이므로 증거로 사용할 수 없지만, 피고인이 법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인정한 진술은 별개로 증거로 삼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유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판결: 위법한 증거에 기초한 법정진술도 증거능력 부정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뒤집고, 피고인의 법정진술 또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위법하게 수집한 1차적 증거를 기초로 한 2차적 증거(법정진술)도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했다.
수사기관이 위법하게 확보한 전자정보(카카오톡 대화내역)가 사건 수사의 유일한 단서였다. 즉, 적법한 증거 없이 수사가 개시되었으며, 피고인의 법정진술도 위법한 증거에 기초한 것이었다.
피고인은 수사 과정에서 카카오톡 대화내역이 이미 증거로 확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이에 영향을 받아 법정에서 진술했다. 즉, 피고인의 법정진술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루어진 자발적 진술이 아니라, 이미 확보된 위법한 증거에 의해 강제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압수·탐색한 증거는 명백한 위법수집증거이며, 그 증거를 이용하여 확보된 피고인의 법정진술도 동일한 맥락에서 배제해야 한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피고인의 법정진술을 유죄 증거로 삼은 원심의 판단이 위법하다며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결론 및 향후 전망
이번 판결은 형사소송에서 위법한 증거 수집이 이루어진 경우, 그 증거를 바탕으로 한 피고인의 진술조차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음을 명확히 한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경찰이 영장 없이 휴대전화를 탐색하고 증거를 수집한 경우, 이를 바탕으로 진행된 수사 전체가 위법한 절차로 판단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을 강화하며, 피고인의 법정진술도 수사 과정의 위법성이 영향을 미쳤다면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는 법리를 확인했다.
이 판결은 디지털 증거 수집 및 전자정보 압수수색과 관련된 형사 절차의 엄격한 준수를 요구하는 기준을 제시한 판례로, 향후 수사기관의 디지털 포렌식 절차 및 증거 수집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