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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약 택배 판매

by 기담

한약사의 택배 판매는 왜 문제가 되었는가 – 약사법 제50조 제1항의 의미와 대법원 판결의 시사점
약사법이 지키고자 하는 공익과 그 적용범위에 대한 분석

2023년 12월, 대법원은 한약사가 한약을 전화로 주문받고 택배로 발송한 행위에 대해 약사법 위반으로 유죄 취지의 판단을 내리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다(대법원 2023. 12. 28. 선고 2023도9880 판결). 이 사건은 단순한 절차상의 하자 여부를 넘어, 약사법 제50조 제1항이 가지는 입법 취지와 그 실질적 적용범위에 대한 법리적 해석을 재확인한 의미 있는 판례다. 본 칼럼에서는 해당 판결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그 함의를 분석하고자 한다.

1. 사건 개요 – 대면 진료 없는 반복 주문과 택배 발송
이 사건의 피고인은 정식으로 개설된 한약국을 운영하는 한약사였다. 처음 방문한 소비자에게 다이어트용 한약을 조제하고 복약지도를 한 후, 해당 소비자가 이후 같은 한약을 전화로 반복 주문하면 이를 택배로 발송하였다. 검찰은 이러한 방식이 약사법 제50조 제1항에 반한다고 보아 기소하였고,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가 모두 적법한 절차와 의약윤리에 따라 이뤄졌다고 주장하였다.

원심은 피고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약을 최초에는 대면 상담을 통해 판매하였고, 반복되는 주문의 경우 동일한 내용물에 대해 기존의 복약지도를 바탕으로 다시 제공한 것이므로, 판매 행위의 실질적인 주요 부분은 한약국 내에서 이뤄졌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 대법원의 판단 – “판매 장소 제한은 한약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대법원은 약사법 제50조 제1항의 문언과 입법취지를 근거로 한약사의 택배 판매를 제한하는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였다. 해당 조항은 “약국개설자 및 의약품판매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약사뿐 아니라 한약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보았다.

이는 단순히 약사의 지위나 판매 장소의 물리적 개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복약지도와 의약품 보관, 유통의 안전성 확보라는 국민 보건의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입법 목적에 따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한약도 엄연히 의약품의 일종이며, 그 판매에 있어 대면 복약지도를 생략하거나 배송 과정에서 오남용 및 변질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았다.

특히, 복약지도가 이루어졌는지 여부는 단지 '설명이 있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상태 변화에 대한 '확인'과 '피드백'이 수반되는 실질적이고 반복적인 의사소통 과정을 전제로 한다고 본 점이 중요하다.

3. 반복 주문과 동일 약제라는 사정은 위반을 정당화할 수 없다
대법원은 특히 주목할 부분으로, “해당 한약이 기존에 처방된 것과 성분, 가격, 내용물이 모두 동일하다는 사실은 위법성을 해소하지 못한다”고 판시하였다. 다시 말해, 동일한 약제를 동일한 대상자에게 반복하여 제공하는 경우라도, 그 행위가 대면 진료 없이 전화 주문으로 이뤄졌고, 복약지도나 전달 역시 약국 외에서 이뤄졌다면, 이는 명백히 법에서 금지한 '약국 외 판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판례인 2008도3423 및 2017도3406 등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되어온 법리이며, 이번 판결은 그러한 법리를 한약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한 연장선상에 있다.

4. 약사법 제50조의 공익성과 오늘날의 해석
이번 판결은 약사법 제50조 제1항의 입법 목적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전통적인 약사제도의 본질적 취지를 지키려는 사법부의 태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해당 조항은 단순한 장소 규정이 아니라, 약국이라는 공간을 통하여 약사의 복약지도, 유통책임, 품질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규범이다.

즉, 약사 또는 한약사가 단순히 약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의약 전문가'라는 지위에서 그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그러한 역할 수행의 전제조건으로서 대면 복약지도와 판매장소의 제한이 엄격히 요구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5. 결론 – 원격의료, 비대면 배송 시대와의 긴장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의료 및 약사 행위의 디지털 전환과 비대면화 흐름 속에서 일종의 균형추 역할을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와 원격의료가 점차 제도권에 안착해가는 과정에서, 의약품의 유통과 판매에 있어서도 일정 부분 변화가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공익성과 안전성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결국 이 판결은 "비대면 편의성"과 "공익적 안전성" 사이의 갈등에서, 국민 보건의 안전을 우선시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향후 약사법 개정이나 의료정책 수립 시에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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