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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Oct 31. 2023

잡초 두 시간 뽑고 이틀을 앓았습니다



전화벨이 울린다.   습관이 들어서인지 휴일 아침인데도 일찍 눈을 떴다. 마침 울리는 소리에 재깍 전화를 받는다.  풀을 뽑고 있단다.  오전에 끝낼 수 있게 천천히 준비해서 오란다. 천천히면 얼마를 더 있다 가야 하지?  나보다 일찍 나가서  일인 냥 고생하고 있는 거 훤히 보이는데 천천히가 말이 안 된다.  새벽녁에 추워서  얇은 이불을 둘둘 말아 가랑이 사이로 집어 넣고 어깨까지 꼭 감싸고 잤는데도 어깨가 찌뿌둥하다.  한쪽으로 걷혀져 있는 커튼 사이로 밝은 빛이 보인다.     망설임없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하품을 하면서도 주섬주섬 눈에 보이는 치마를 걸친다.  제정신이 아니다.  오전 7시다.  


어제 저녁 같이 가자 했다.  엄마 혼자 힘드니 좀 도와달라 부탁을 해놓았다.  두말 않고 도와준다 했다.  모자를 눌러 쓰고 맨얼굴에 마스크 한 장 걸치고 언뜻 잠들어 있는 방문을 쳐다본다.  눈을 감고 있는지 자는지 뒤척임도 없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가끔씩 녀석들은 하기 싫은 일이 닥치면 그런 식으로 표현을 한다.  나도 그러니 저 감정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서운하다.  안 듣는 건지 안 듣는 척 하는 것인지 짐작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따라나서기 싫은 것임을.  더군다나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에 나설려니 젊은 나이에 귀찮을 수밖에.  나도 귀찮다. 장화를 찾아 신는다.  비가 올 듯하다.

 

오빠가 풀을 뽑아 놓은 곳에 작은 벌레들이 우글거린다. 미물이나 저들도 사는 터전일텐데 남이 와서 막 함부로 짓밟고 있으니 화가날 만도 하다.  이리저리 갈피를 못잡고 바삐 움직인다.  어쩌나 저것들이 나를 덮치면.  애써 밟지 않으려하나 밟지 않으면 내 일을 마치지 못하니 두려움 무릅쓰고 진격한다.  징그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저걸 밟아가며 풀을 뽑아야하니 미칠 지경이다.  어제 내린 비로 쑥쑥 뽑히긴 하지만 일단 풀이 너무 많이 자라 있다.  내 몸으로 기어올 것 같다.  그렇다고 무섭다고 소리칠 수도 없다.  군말 없이 열심히 일하는 오빠 옆으로 다가가 미안스러워서 쓸데없이 한마디 건넨다.  그래도 축축하니 잘 뽑혀서 다행이란다.  아니면 낫으로 쪼거나 호미로 쪼아야할 텐데 비 맞은 풀이 괜스레 고맙다.  대신 뭉친 흙덩이가 무거워 잘 털리지 않아 낫으로 쪼아야 한다. 일머리가 없어  힘들다.  




 분을 허리 굽혀  풀을 뽑았더니 안경으로 땀이 뚝뚝 떨어진다.  이미 옷은 젖은 지 오래다.  



'엄마가 이렇게 힘들었겠구나, 하루 이틀도 사흘도 아니고 평생을 그리 일하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내 것이니 이리 쉬엄쉬엄 하지만 날품팔이하던 엄마는 그때 쉬지도 못하셨으리라' 엄마의 삶을 생각하니 눈물인지 땀인지 범벅되어 흐른다.  시원한 얼음 생각이 절로 난다.  일 못하는 사람들이 부리는 허세다. 틈만 나면 쉴 생각을 한다.  


오빠는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쭈그리고  묵묵히 일만 한다.  어이구 미련한 사람.  자기 일도 아닌데 좀 쉬면서 하면 어떨까.   부지런함이 몸에 밴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부지런하다.  일 못하는 오십 넘은 동생이 애처로웠을까.  멍하니 바라보는 저를 보며 씨익 웃어준다.  또 그런 오빠가 고맙다.  오전 안에는 끝낼 수 있겠다 그러면 나가서 시원한 냉면 한 그릇 먹고 오잔다.  이대로 끝내고 집에 가면 일어나질 못할 것 같다.  냉면 소리에 퍼뜩 몸이 반응을 하지만 천근만근이다.  모기가 살을 파고들어 따끔하다.  일 못 하는 사람은 어딜 가도 표가 난다.  치마를 입고 간 게 화근이다.  


앨리베이터도 없는 계단을 올라와 샤워를 하니 온 만신이 아프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몸에 이 빠지고 욱신거린다.  쓰러질 것 같다.  엄마는 이런 상태에서도 거나하게 술 취해 들어오는 남편을 위해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셨겠지. 몸 아픈 거 몰라하며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엄살 부리냐는 남편의 서러운 잔소리를 씻어낼 겨를도 없이 또 배아파 낳은 자식 먹을 저녁밥을 지으셨겠지.  그렇게 사셨구나, 내 어머니는.  가정을 지키는 법칙이었을까.  



20평 가량의 땅에 난 풀을 깡그리 뽑았다.  잡초 수준이 아니다.  손을 보지 않았으니 저도 막무가내일 수밖에. 집 가까이 살아도 어쩌다 한 번 친구를 만날 일이 있으면 들여다보는 곳이다.  내 손 닿은 적이 없다.  오빠가 가끔 찾아가 안부도 전하고 온다.  어쩌다 들르는 길에 잠시 얼굴만 비치고 오는 나와는 많이 다르다.  그래도 내가 이곳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내 부모님의 세월이 묻어 있는 곳이다.  그리운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한 곳이고 무화과 익어가는 그늘에 앉아 땅따먹기 하던 곳이다.  중년의 추억을 갖게 해 준 잊을 수  없는 곳이다.  그건 그리움의 법칙이다.  


아프다는 소리가 절로 난다.  비명소리에 가깝다.  별나다.  부모님들은 평생을 몸바쳐 살아낸 삶인데 하루도 아닌 고작 두 시간 노동한 걸 가지고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고 있다.  엄마의 삶이 새삼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살아계셨으면 엄마를 보며 통곡할 것 같다.  


'엄마,  꼴랑 두 시간 일하고 앓아 누웠어요.  엄마는  노가다 하시면서 어떻게 그 길고 힘든 삶을 견뎌 내셨나요?  왜 아프지 않으셨겠어요.  거제때기 아지매 당신은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에요. 새삼 오빠의 모습에서 근면한 당신의 삶이 보였어요.  잘 지킬게요.'


 땅은 엄마가 내게 주신 유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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