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석사 무량수전을 바라보며

유네스코 한국 산사ㅡ부석사

by 어린왕자


유네스코 한국 산사 3 ㅡ봉황산 부석사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 676년에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수사찰이다. 대사는 당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깨달은 화엄의 도리로 국론을 통일하여 내외의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자 귀국하여 이 절을 창건하였으며, 이후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고 전한다.

실제로는 봉황산인데 태백산 부석사라 불린다.


부석사로 불리게 됨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어 있지 않고 '뜬 돌'이라 한 데서 연유한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 혹은 흥교사라 불리었다. 1916년 해체 보수 시에 발견된 목서명에 의하면 고려초기에 부석사는 무량수전 등이 크게 중창되었으나 공민왕 7년(1358) 외적의 병화를 당하였고 그 후로 우왕 2년(1376)에는 조사당이 재건되었다 한다.

경내에는 신라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석조여래좌상(보물), 삼층석탑(보물), 당간지주(보물), 대석단 등이 있고 고려시대 유물로는 무량수전(국보), 조사당(국보), 소조여래좌상(국보), 조사당 벽화(국보), 고려목판(보물), 윈융국사비 등이 있다고 전해진다.


특히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 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부석사 성보박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 무량수전 안에 봉안된 소조여래좌상은 진흙으로 만든 소조불상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성보박물관이 지금 공사 중이라 국보인 조사당 벽화와 보물인 고려 목판을 못 보고 온 것이 많이 아쉬웠다.


여행길은 언제나 설렌다. 가을 여행은 해가 짧은 관계로 내 몸이 바쁘다. 예전만큼의 강행군은 조금씩 무리임을 느끼고 있기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을 위주로 서너 군데만 밟기로 한다. 영주 부석사를 첫 코스로 잡고 소수서원을 거쳐 안동 봉정사, 낙동강 물길공원, 도산서원, 이육사문학관을 다녀오기로 잠정 계획을 잡고 우선순위를 고르기로 했다.

계획대로 안 되면 다음에 또 가면 된다.

전날 토요일, 설렘인지 사춘기인지 모를 떨림으로 잠 못 이루다 일요일(3일) 이른 새벽 동트기 전 운전대를 잡았다. 일용할 양식이 될 과일과 드립커피를 챙겨 솟구치는 즐거움을 안고 여명길을 달린다.


오리무중이다. 그야말로 하얀 안개가 고속도로를 덮었다. 터널을 들어서면 사라졌다가 빠져나오기 무섭게 또 자욱하다. 강 주변이라 그러할 터, 오묘한 빛을 내는 쌀뜨물빛 안개는 오묘하게 자아내는 감탄의 속도보다 더 빠른 깊이로 흩어졌다 휘몰아 들었다.

가을 안개의 황홀경이다.


부석사 초입엔 붉디붉은 가을도 있고 가지 끝에 매달려 떨고 있는 노란 가을도 있고, 떨어져 발에 밟히는 빨간 가을도 있다. 이미 낙화한 가을은 돌담에 안겨 포근한 하루를 여유롭게 시작하며 지나는 길손을 반갑게 맞는다. 어머~~ 가을이 지나가고 있구나. 단풍잎은 이 많은 사람들 뜸에 끼어 밟히지 않으려 이리 구르고 저리 뒹굴고 엎어지고 꼬꾸라지며 한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붉음이다.

와~~ 이른 아침 시간인데도 사람들 너무 많다.


부석사는 초입부터 황홀함을 자아내는 길이다. 노란 은행나무 길 따라 길게 늘어선 장사꾼들의 입담이 예전 조용하던 부석사를 잊게 하지만 가을 그림 앞에 잠시 머무르기에 충분했다. 길을 가다 조용히 서서 하늘을 우러르면 또 다른 가을의 그림이 엿보인다.

옹이가 생긴 은행나무도 그 또한 멋진 가을 작품이다.


저마다의 용기와 저마다의 결투로 이 가을을 지난다. 돌계단 끝 나무화분 속에 여린 꽃이 피어나 카메라 들린 내 여린 손을 떨게 한다. 발을 잘못 디디면 한길 낭떠러지로 추락할까 조심스러워 그 자리에 선 채로 화분을 감싸 안은 덩굴을 찍는다. 바라는 대로 각도가 나올 리 없다. 그럼에도

가을은 온 사방이 빛이다.



누각에 걸린 목어는 푸른빛을 내며 여의주를 문 용머리에 두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2층으로 된 안양루는 무량수전과 마주 보는 곳에 있다. 위와 아래 편액이 다르며 안양은 극락이란 뜻을 가지고 있어 안양문을 지나면 극락인 무량수전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노스님의 법고 소리를 듣기 위해 늦게까지 기다려 듣고 온 적도 있다.

해 질 녘 듣는 부석사 법고 소리는 가히 심금을 울리고도 남는다.


무량수전을 나와 오른쪽 산길을 따라 돌계단을 오르면 국보인 삼층석탑이 나오고 잠시 숨 고르기를 할 때쯤 조사당이 나온다. 조사당은 사찰에서 부처님의 법을 이어온 조사 스님 또는 사찰 창건주 등을 기리려고 만든 전각으로 조사전, 조사당이라 한다. 부석사 조사당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를 모시고 있는 전각이다. 조사당 내부에는 국보로 지정된 벽화가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는 무량수전에 보관하다가 지금은 성보박물관에 있다고 전한다.

성보박물관은 공사 중이다. 가는 곳마다 수리 중인 곳이 많다. 이런~~~~~~♡

조사당을 나와 왼쪽 호젓한 산길을 걷다 보면 초록 길이 너무 예쁘다는 감탄이 끝나기도 전에 자인당과 응진전이 나온다. 부석사에서 젤 위쪽에 있는 전각이다.

자인당에는 세 분의 불상이 있는데 중앙의 석조여래좌상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좌우 두 분은 비로자나불상이다. 광배가 빛난다. 동쪽 불상은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있고 서쪽 불상은 서쪽보다 당당하고 부드럽게 묘사되어 있다. 세 불상 모두 부석사 인근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해진다.

석조여래좌상과 비로자나불상의 광배에 감탄을 자아내며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보물을 훼손하는 행위라 사진은 찍지 않고 한동안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묵직한 근엄함이 배어났다. 그도 우리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다 여겼다.

나무관세음보살


선묘각은 의상조사의 창건설화와 관련된 선묘를 모신 전각이다. 선묘의 영정은 1975년에 그려졌다 전한다.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태곳적 신비를 느껴보고 싶건만 그럴 새가 없다.


부석사를 내려오면서도 연신 카메라 셔트를 누른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림 같은 풍경에 누군가의 기도가 생생하게 적혀 있다. 그 또한 한 폭의 가을을 빛내는 그림이다.

부석 사과 두 박스를 샀다.
사과도 빛났다.

찬란한 부석사는 훗날 내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부석

#부석사#영주부석사#무량수전#부석사무량수전#영주가볼만한곳#의상대사#선묘낭자#경북영주#영주#조사당#조사당벽화




keyword
이전 06화영남제일루에 기대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