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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제일루에 기대서서

밀양 영남루

by 어린왕자 Jan 13. 2025


밀양 영남루는 밀양강의 아름다운 풍광과 조선후기의 뛰어난 건축미가 조화를 이뤄 우리나라 전통 누각의 진수를 보여 준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3대 누각으로 꼽힌다. 측면 4칸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기둥 사이를 넓게 잡고 굵은 기둥으로 누마루를 높여 웅장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영남제일루라는 이름에 걸맞다. 좌우 부속 건물인 능파각과 침류각을 날개처럼  거느리고 있다고 전한다.

 

사실 영남루 건물은 여느 누각과 다르게 구조가 독특하다. 어느 건물에서도 볼 수 없었던 양 옆의 두 건물이 중앙의 영남루와 연결되어 있고 특히 침류각은 계단형으로 굉장히 특색 있는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세상에 이걸 이제야 보다니!


 밀양 영남루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2023년 국보로 승격되었다.


 현재의 영남루라는 이름은 고려말 1365년 공민왕 때 지밀성군사 김주가 영남사가 있던 절터에서 새 누각을 지으면서 붙였다. 조선시대에는 객사 부속건물로 쓰였다. 현재의 건물은 1844년 밀양부사 이인재가 새로 지었다. 유명한 문인들의 시와 글을 새긴 현판이 한때 300개나 걸려 시문 현판 전시장으로 불렸다 전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영남루를 오르는 계단의 형태도 독특하다. 바퀴가 있는 것들이 오르고 내릴 수 있도록 계단과 평면길이 지그재그로 펼쳐져 있다. 계단을 오르기 힘든 교통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편의가 돋보인다. 계단도 밟았다 평길도 밟았다 해서 그런지 오를 때 힘이 덜  들었던 것 같다. 놀이하듯 금방 오르게 된다.


 계단을 오르다 아래를 굽어보면 밀양 시내가 펼쳐진다. 또 다른 계단을 오르고 올라 일주문을 들어서면 시내보다 더 푸르게 펼쳐진 잔디밭 속으로 영남루가 밀양강을 보며 우뚝 서 있는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남루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밀양강이 흐르고 있다. 밀양강을 사이에 두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서울의 밤섬과 닮았다는 해설사의 설명이 덧붙여졌다.

 예전에도 영남루를 분명 여러 번 보고 갔는데 그저 풍광만 보고 갔나 보다. 영남루 양 옆으로 두 누각이 연결돼 있는 것을 오늘 처음 보고서는 감탄을 내지르고 말았으니 말이다. 밀양강이 아름다웠고 시원했고 해설사님의 해설을 엿듣는 행운도 함께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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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를 모델로 지었다 하며 여러 개의 현판 중 영남제일루 간판은 이색의 제자인 이인재의 아들 이현석이 9살 때 썼던 것이라 한다. 그리고 영남루라는 현판은 이현석이 아홉 살보다 더 어렸던 여섯 살에 썼다 하니 가히 감탄스러움이 절로 날 뿐이다.
 
 모든 목재 건물은 화마에 취약하다. 궁궐에 화마를 막기 위해 드므가 설치되어 있듯 이곳  영남루에도 화마의 불기운을 막기 위해 사신도가 그려졌다 한다. 또한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용 열 마리를 새겼다고도 한다. 설명을 들으면서 사신도를 찾으려 기둥을 살피다 처마 안쪽 천장에 그려져 있는 걸 발견했다. 처마의 뼈대는 서까래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작은 벽에 벽화들이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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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루를 바라보는 뒤편에 만덕문을 정면으로 들어서면 주심포식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의 천진궁이 자리하고 있다. 천진궁은 단군과 역대 왕조를 세운 시조의 위패를 모셔둔 사당이다. 옛 밀양도호부 객사자리에 효종 3년(1652)에 창건되었으며 공진관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전한다.


 영남루 바로 옆에 작곡가 박시춘 선생의 옛집과 동상이 세워져 있다. 선생은 유년 시절부터 극단을 따라다니며 여러 악기를 연주하다가 <희망의 노래>에 이어 <물방아 사랑>을 발표하며 인기 작곡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전한다.
 


 사명대사의 동상은 박시춘 옛집에서 언덕을 오르는 길과 긴 계단을 따라 오르는 길에 있다. 아래서 바라보면 계단이 까마득하게 길다. 사명대사는 1544년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인 서산대사로부터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라는 격문을 받고 최초로 의승병을 금강산 건봉사에서 일으켰다.

 1594년 왜장 가토기요마사의 진중에 네 차례나 들어가 휴전협상을 벌였고 정유재란 때에는 울산의 도산과 순천의 예교에서 전승을 거두기도 했다. 이 동상은 무봉사 주지로 있던 김대월 스님의 발의로 밀양 사람들이 성금을 모아 1971년 4월 25일 건립하였다 전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무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다. 통일신라 때 법조대사가 영남루의 전신인 영남사의 부속암자로 창건하였다. 밀양 무봉사 석조여래좌상은 영남사지에 전하여 오던 것을 무봉사로 옮겨 왔는데 원래 대좌와 광배가 없던 것을 근처 땅속에 묻힌 광배를 불상에 붙이고 대좌는 따로 만들었다 전한다.

 석조여래의 광배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노라니 따뜻한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밀양강을 품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밀양읍성은 성종 10년인 1479년에 만든 것으로 다른 읍성은 임진왜란 직전에 만들던 것에 비해 100년 이상 일찍 만든 것이다. 영남루가 지어진 것보다 빠르다. 조선시대에 석축 되었다 전한다.

 입동 날씨가 제법 훈훈하다. 윗옷을 벗어 팔에 걸치고 읍성 언덕길을 오르니 양 옆으로 군데군데 운동 기구들이 간간이 운동하러 들르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가을햇살이 녹음 사이로 흩어져 들어온다.


 영남루를 내려와 바로 옆 밀양 관아지로 향한다. 따뜻한 날씨에 허기가 지는데도 밀양 관아를 둘러보고 시장통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관아지는 나랏일을 처리하던 수령이 업무를 보던 중심 건물인 동헌을 근민헌이라 불렀고 양 옆 부속 건물로 서헌과 별실이 있었다 전한다. 임진왜란 때 불탔다.

 
 매죽당은 1927년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다가 복원한 것이라 전하며 공부를 하던 곳으로 여겨졌다. 오른쪽 측면 한쪽 방에 훈장님이 앉아 학동들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 재연되어 있다.


  
 입동에 찾아간 밀양의 영남루가 이렇게 유서 깊고 역사가 깊은 곳인지 후다닥 둘러보던 옛날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몇 번을 다녀간 곳이건만 주변의 경치만 보고 국밥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돌아 나왔던 곳이다. 느긋한 마음으로 알고 싶었던 것을 알아가기로 하고 다시 와 보니 주변의 상가나 거리들이 예전보다 잘 정비되어 있어 둘러보기도 편했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깊이 있는 내력을 알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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