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낮에 스며들다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을 떠올리며

by 어린왕자

안도현 시인은 간장에 절여져 쪼그리고 앉은 꽃게장을 보며 가슴 아파했는데 나는 토마토지를 보며 맛있겠단 생각을 한다.
미안하다 그냥, 누구에겐지는 모르지만 딱히 상대가 없는 상대에게 미안하다. 저들도 아픔이 있을 텐데, 아픔을 읽지 못했다. 한참 후에 그걸 알았다. 꽃게만 생명 있는 게 아니라 푸르뎅뎅 저 토마토도 익어갈 삶이 있었을 텐데. 맛있다는 감정을 느낀 후에야 너의 아픔을 읽고 말았다. 그저 미안하다. 그러나 그 또한 그의 삶인 것을. 푸르게 푸르게 젊음을 노래하다 붉음으로 스러질 운명인 것을. 그것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 또한 인생의 순리인 것을. 붉은 토마토를 보며 맛있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여름 한낮에 익어가는 모든 것들에 우리가 스며드는 이유다.



장맛비에 저 녀석이 어찌

그 자리에 붙어 있나 걱정도 되고

얼마나 익었을까 기대도 되고

달려갈까 마음먹은 토요일은

친구가 바쁘다 하여 미련을 남겼다

일요일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안고

설렘에 달려간 텃밭은

어머나

호박넝쿨이 너무 자라 숲을 이루었다

익어갈 거라 생각한 호박은

푸르뎅뎅 그대로 늙어가고

올망졸망 달린 토마토는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기어코 쓰러져갔다


땀 뻘뻘 흘리며 움직이는 맛은 짜도

수확물은 넘쳐나고

지는 해 바라보는 마음은 늘 풍요롭다

내가 가져온 게 저만큼이니

서로에게 베푼 정도 두텁다

익어가는 토마토를 한입 베어 물고

푸르뎅뎅 토마토는 새콤함을 채운다


한여름 젓가락질이 바쁘겠다






#토마토지 #어린왕자의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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