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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케이크

by 어린왕자


어젯밤 열 시가 넘어 운동 다녀오던 큰 녀석이 케이크 하나를 들고 들어왔단다. 그러고선 톡으로 내게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낼 오전에 먹으세요 한다. 그래, 알았엉 대답을 보내고는 짜식, 챙긴다고 신경 써 줘 고맙네 하며 미소를 지어 보이다가 한편으론 또 제가 먹고 싶은 케이크 샀구나 하는 떫은 미소도 섞여 나오고 말았다.

큰 녀석은 청개구리 기질이 좀 있다. 내가 이거 사 오라 하면 엄마 이거는 어때? 저걸로 사 갈까? 하며 토를 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심부름을 잘 시키지 않고 너가 좋은 거 사 오라 하는 편이다. 엄마가 필요한 거 사다 주고 저 필요한 거 사면 아무 말하지 않는데 꼭 필요한 것 사 오라는 것에 토를 다니 어떨 때는 짜증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케이크도 그랬다. 나는 개인적으로 크림이 들어간 걸 별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 생일에도 굳이 촛불을 밝히겠다기에 사진을 보여주며 그럼 딸기가 올려진 생크림 케이크 사 오랬더니 그건 매장에 없다고 한다. 진짜로 없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매장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알아서 사라고 했다.

사실 나는 딸기 케이크보다 현금을 더 선호한다. 그렇다고 케이크 값까지 돈으로 환산해서 달라 하기엔 너무 속물 드러내는 것 같아 저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엄마 생일 축하하요 하며 건네는 케이크를 오랜만에 받아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설렜던 맘도 컸다.

밤 열한 시쯤 집에 도착하니 제가 들고 온 케이크가 냉장고에 있다며 보라 한다. 알았어, 좀 있다 볼게 건성으로 답을 하고는 씻기 바빴다. 그래도 큰 녀석은 꽁무니에 붙으면서 오늘 먹지 마세요 또 당부하고는 냉장고에 든 케이크를 친히 들고 나와 보여 준다. 그리고는 이마를 치며 초를 안 들고 왔다며 탄식하고 있다. 이어 나이는 숫자, 케이크는 사랑, 초는 없어도 돼 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준다. 다 큰 녀석이 부끄럼 집어치우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 예쁘고 귀엽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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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사다 놓은 모카맛 나는 케이크 한 조각 떠서 예멘 커피 한 잔을 내려 오늘 아침을 대신한다. 달달한 케이크가 신맛 나는 드립 커피와 어우러져 환상의 맛을 낸다.

녀석들의 정성이 따사로운 봄햇살보다 몇 곱절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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