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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포에서 부네치아까지

by 어린왕자


바다에 서면
가슴이 뻥 뚫릴 거라는 막연한 환상
나는 갖고 있다
가슴에 뭔가 맺힌 것이 없어도
그냥 화악 뚫릴 것 같고
답답한 뭔가 짓누를 때도
그냥 화악 뚫릴 것 같다
막힌 것이 있거나 없거나


벚꽃은 봄바람에 지고
버드나무 이파리는 봄바람에 춤추고
연인도 흔들리며 춤추고 있다
바다인 듯 하늘인 듯
먼 수평선 너머를 보며
하루의 행복을 달리고 있다
네가 와서 편안하다고
잘 왔노라고


강아지야 너도 왔구나
아지매, 똥은 치우고 가야지요
모래속에 살짝 숨겨두면 안 되지요
지나는 사람들 미소 잃으면
다시는 다시는 볼 수 없단 말야요
저 그림이 그냥 서 있는 건 아니지요
하도 모래속에 처박은 똥이 많아서
밟고 다니기 더러버요


방 하나를 차지한 신발들
맨발로 모래를 걷는 아지매들이
살포시 벗어둔 세월의 흔적
가져가지 말라고
그래도 함께 풍파를 겪은 몸이니
더러버도 갖고 가지 말라고
그러나 사진 찍는 나는
저게 오히려 와 닿았다오
차라리 멀리서도 티나는
붉은 청춘이었음 불편했으리
나는 이렇게도 살아간다오
나즈막한 몸부림임을


바다에 서면 가슴이 뻥 뚫릴 거란 생각
무엇을 뚫었는지 알 수 없으나
마냥 트여서 좋았고
실로 오랜만이어서 좋았고
아무것도 뚫지 못해도
반겨주는 연인들의 환호에
오래 걸을 수 있어 아름다운 날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느낀 날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못 가도
부네치아는 갔다왔다
다대포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른 장림포구
알알이 놓인 배들 위로 삶이 떠 있다
꿈도 낚고
사랑도 낚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인생을 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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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포해수욕장 #부네치아장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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