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만들고 역사가 잊은 이름
압도되는 책이다. 제목에서부터. 미사여구 없이, 어떤 MSG도 전혀 첨가하지 않은, 제목 하나만으로 집필 기획 의도가 뚜렷하게 보인 책이다. 이런 책은 반드시 읽어줘야 한다. 좀 부담스럽고 딱딱하지만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이다.
삼순이ㆍ 지금은 사라졌지만 시대가 만들어 낸 이름이다. 그때는 어떤 말보다 친숙했던 이름이 중앙이 아닌 주변부에 자리한 이름이었지만 우리는 그 이름 덕분에 이만큼 살고 있다.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야 했을 때 가장 고단했던 그들. 삼순이들은 '비아냥거림'의 표현이었으며 비하 표현으로 불렸다. 독자인 나로서는 잊힌 이름을 다시 기억하게 해 줘서 반갑고 고마웠다. 작가도 사라진 삼순이를 소환하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썼다고 피력한다. 어쩌면 이도 잊히지 않아야 할 그리움의 대상이란 생각을 해본다. 우리 어머니와 누이, 언니들이었기에.
ㅡㅡ이 책은 한국 현대사, 특히 해방 후 1980년대 초까지 흔하디 흔했던 '순이'들, 그중에서도 '삼순이'에 관한 이야기다. 그 많던 삼순이들은 "어!" 할 새도 없이 연기처럼, 아니 냄새 마서 사라졌다. 쏜살같이 빨랐던 격변기였고, 주변부에 자리했던 탓에 사라짐에 가속도가 붙었는지도 모른다.
삼순이들은 몇십 년 전에 청춘이었던 지금 우리의 어머니 또는 언니, 누이였다. 그들의 청춘은 화창한 봄날이 아니었다. 화려한 경제발전의 그늘에서 그들은 이름과 달리 '순'하게 살 수 없었다. 인권 유린과 매연,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 살인적인 강도의 노동을 겪으며 청춘을 보냈다. 이름과 반대로 억척스러워져야 했다.
'억순이'는 가장 모순적인 이름이다. 모진 고생의 대가가 정당했는가? 그러지도 못했다. 세상은 한 술 더 떠 그들을 '삼순이'라고 조롱했다. 이 억압적인 상황에 이의를 제기한 삼순이는 극소수였다. 그때마다 작명가들은 자신들이 지은 이름대로 행동하기를 요구했다. 그렇게 그들은 묵묵히 참는 '곰순이'가 되었다.
이 책의 독자, 특히 왕년에 '삼순이'였던 독자들에게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과연 삼순이라는 비하 표현이 합당한가?'라는 문제에 봉착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때 가장 고단했던 그들을 위로는 못 해줄망정 비하 표현을 해야 하는지, 마침표를 찍으면서도 고민했다.
하지만 시대 상황에 충실하기로 결단 내리기로 했다. ㅡㅡ프롤로그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이 수원 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위 사진은 1970년대 버스안내양의 모자를 형상화했다. 이번 전시는 역사와 사회의 변곡점에서 일해왔던 여성들의 단상을 얘기한다.
버스안내양의 인기가 높아 해마다 경쟁률은 높았으나 임금은 박했고 그러다 보니 몸매를 확인하기 위해 이력서에 상반신 사진을 넣기도 했다고 한다.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여자의 대표적인 직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어느 시대를 살았건 여자들은 일해왔다. 돈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교육을 받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세월을 노동에 힘썼다. 그것이 그들의 책임이었으며 그들의 삶이었다.
식구의 입을 덜기 위해 남의 집으로 가서 허드렛일을 해야 했고 밥이 되든 죽이 되든 그 삶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들의 노동의 대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상받지 못했다.
ㅡ<조선일보>가 조사한 성북구는 당시 서울 판자촌의 대명사였다. 그야말로 식모 전성시대였다. 한국에 온 외국 주부들은 웬만한 가정마다 식모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반대로 외국 경험이 있는 한국 주부들은 그들이 식모가 없다는 데 놀랐다. 주부에게 식모는 없어서는 안 되는 가정필수품 같았고, 식모가 없는 주부는 그들 사이에서 손가락질을 받았다. ㅡ본문
ㅡ1979년에 일어난 10.26 사태는 유신체제 붕괴와 군부독재 종식의 결정적 계기로 한국 현대사의 분기점이 되었다.
YH무역은 1966년 10여 명의 사원으로 출발한 이래 가발 수출의 호경기와 정부 수출 지원책에 힘입어 승승장구했고 창립자와 경영자는 온갖 불법을 저질렀다. 여공들은 저임금과 비인간적 대우를 개선하기 위해 시위 농성을 벌이지만 경영자는 누적된 부채 등으로 폐업을 결정했다. 회사가 문을 닫는 급박한 상황에서 여공 186명은 투쟁을 대외에 알리고자 신민당사를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여공들이 야당 당사를 점거했고, 정부는 이들을 옹호한 김영삼을 박해했으며 이는 부마항쟁을 촉발했고, 정권 실세들이 갈등을 겪던 끝에 대통령이 암살되었다.
단지 자신들의 일터를 지키려 했던 여공들은 역사의 흐름을 바꿀 단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ㅡ본문
우리의 어머니, 언니들, 또는 누나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까를 생각하면 감히 그들을 비하할 순 없다. 삼순이는 시대적 산물이다. 그러나 이름을 달리한 삼순이는 지금도 존재한다.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미래의 삼순이는 누가 될 것인가?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이주 여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시대가 만드는 이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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