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향교
조선시대 향교는 지방에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으로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동시에 담당하였다. 수원향교는 원래 경기도 화성시 봉담면 와우리에 있었으나 수원의 읍치가 팔달산 아래로 옮겨지면서 1789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수원향교 앞에는 하마비가 있고 나무로 세워진 홍살문이 있으며 외삼문, 명륜당, 외삼문, 동무, 서무, 대성전 등의 건물이 있다. 1795년 윤 2월 11일 정조대왕이 을묘년 행차 시 수원 향교 대성전에서 참배를 행한 후 대성전, 동무, 서무의 건물을 새로 중건하게 명하였고 그해 8월에 공사를 마쳤다.
1892년 중수 이래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수원 향교에서는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하며 봄과 가을에는 석전대제를 지내고 있다.
약간 언덕길을 올라 이른 곳에 정면을 향한 문은 닫혀 있다. 살짝 밀어 양반의 기운을 느끼고 싶었으나 나무문은 안에 걸어놓은 걸쇠로 오히려 삐끄덕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양반 신분을 갖기는 글렀나 보다. 소리로라도 흉내 내고 싶었던 게지.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기에 외려 다행이다.
중국 제남시와 수원시의 자매결연 체결 10주년을 기념하고 양시의 지속적인 우호증진을 위해 수원시에 고대 중국의 위대한 교육자이자 사상가인 공자의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공자(bc 551~479)는 노나라 창평향에서 출생하였으며 자는 중니, 이름은 구이다. 춘추시대 말기의 혼란한 사회배경 속에서 공자는 위정자의 도덕과 예의에 의한 정치를 이상적 정치라고 여기며 그 사상의 중심이 바로 인이라고 생각했다.
교육가로서도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으며 그의 사상은 사후 제자들에 의해 편찬된 '논어'에 잘 나타나 있다.
명륜이란 인간 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으로 <맹자> "등문공편"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데 있는 것이다'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성균관의 유생들이 이곳에서 글을 배우고 익혔으며 또한 왕이 직접 유생들에게 강의한 곳이다.
팔달산 아래 아담하게 자리 잡은 수원향교는 밝은 햇살을 받으며 수원을 향해 바라보고 있다. 전날 내린 비로 더욱 깨끗해진 외형에 바람도 제법 불어 여름의 운치를 더했다. 툇마루에 잠시 걸터앉아 공자의 가르침을 받들어 <논어> 한 마디를 되뇌어보고 일어섰다.
동무 툇마루에 방문객이 앉아 쉬고 있다.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앞으로 지나가기 민망해서 살짝 옆에서 사진만 찍고는 돌아 나왔다. 잡초 하나 없이 관리가 잘 되어 있다. 풀냄새, 나무 냄새가 바람에 흩날려 숲 속에 온 기분을 내게 해준다.
은행잎이 물들면 이곳도 예쁠 듯하다.
작은놈이 방을 얻어 제살림을 하고 있었건만 1년이 지나서야 집구경을 했다. 애미 마음이야 올라가서 닦아 주고 치워 주고 해주고 싶지만 그것마저 부담으로 느낄까 봐 가는 것을 삼간다. 오라고 해야 올라간다는 주의자다.
이번엔 오라 안 했는데 애미가 가겠다 했더니 거절은 할 수 없었나 보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어버이날이라고 선물 사놨다길래 가져오기도 할 겸해서 올라갔다. '어서 오소' 하며 양팔 가득 안아주는 모습이 새삼 흐뭇하다. 제법 깔끔하게 재밌게 살고 있다.
수원, 좋은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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