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훔친 미술>ㅡ이진숙
ㅡㅡ미술은 시대의 역사를 반영한다. ㅡㅡ
우리는 세계의 역사를 알기 위한 방법으로 미술 작품을 활용하기도 한다. 전시관이나 미술관에 걸린 작품으로 시대를 읽고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까지 읽어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의 역사를 배워나간다.
<시대를 훔친 미술>은 세계사의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예술적 이야기를 풀어내고 또한 그 그림을 통해 시대를 바라볼 수 있게 한 꽤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는 책이다.
미술이 보여주는 인간상은 다양하다. 개인화부터 종교화, 그리고 세계의 모든 이야기까지 많은 다양한 그림들을 통해 인간들이 갖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삶을 살고자 했을까를 들여다볼 수 있다.
미술 작품을 통한 세계사와 서양사.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미술과 함께 탐닉한다.
이 책에는 찬란한 노을로 물든 중세의 가을부터 르네상스 시기, 종교개혁과 바로크 미술의 전성기, 절대왕정 시기를 거쳐 로코코 미술, 프랑스 대혁명의 순간들, 자유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노동자가 주인이 된 시기를 거치며 제국주의의 시기를 지나 전쟁에 이르게 된 경위를 거쳐 전쟁은 이제 그만 까지 23개의 쳅터를 통해 다양한 미술 작품을 통한 인간 자취로서의 방대한 예술사를 다룬다.
렘브란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온갖 부를 누리며 살다 유복한 상속녀 사스키아와의 결혼도 성공한다. 남부러울 것 없었지만 자식들이 태어나자 차례대로 죽고 넷째 아이만 남기고 사스키아도 죽고 만다. 수입이 없던 렘브란트는 파산하게 되고 숨겨둔 여인 헨드리케도 세상을 떠나고 27살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 그에게 남은 건 가난과 고독뿐이다. 그는 원망 대신 사랑을 택하며 아버지가 아들을 용서하는 <돌아온 탕아>를 남긴다. 아들을 용서하는 아버지 옆에 불만에 찬 맏형의 부정적인 태도까지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예술은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또 다른 불일치의 가능성도 용인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듯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에 미술 작품 또한 공존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중세시대 봉건제가 해체되고 도시 성장이 가속화되면서 시민 초상화가 등장한다.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산타마리아 대성당 같은 돔 형식의 건물이 지어지고 원근법을 적용한 <신성한 삼위일체> 같은 그림들이 등장한다. 메디치가의 집권이 사라지고 공화제의 기초가 형성되면서 시민의 단결력을 보여주기 위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가 완성된다.
사실 르네상스는 율리우스 2세 때 정점을 찍으면서 미켈란젤로의 <시스타나 예배실 천장화>를 남기고 라파엘로의 <아테나 학당>을 남긴다.
메디치가의 로렌초의 둘째 조반니가 교황 레오 10세가 되면서 다시 메디치가 집권한 이후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난다. 로렌초의 동생의 아들이 교황 클리멘스 7세가 되었을 때 클리멘스가 신성로마제국에 위협을 느껴 프랑스와 신성 동맹을 체결하게 되자 신성로마의 카를 5세는 피렌체를 침공한다. 이후 클리멘스는 미켈란젤로에게 카를 5세가 심판받기를 바라며 <최후의 심판>을 의뢰한다.
누군가는 그랬다. 베드로와 로마 교황청의 권위와 정통성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체험되는 것이라고. 웅장함과 비현실적인 우주적 역동성으로 관람객을 압도하는 것, 즉 이성적으로 설득하기보다 종교적 열정을 체험하는 것이 맞다고.
이탈리아를 여행할 기회를 만들어 실제로 거장의 미술 작품을 체험해 보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일으키게 한다.
바로크 미술이 기독교 중심의 중세를 대표하는 양식이라면 로코로는 절대 왕정의 시기와 함께 한다. 귀족들은 사랑할 자유를 느끼고 왕정의 화려함 속에서도 사랑을 꿈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절대왕정과 계몽주의가 공존하는 이유다. 귀족적이며 감미로운 사랑의 분홍색이다. 루이 15세의 애첩이며 사교계의 여왕인 마담 퐁바두르의 초상화는 귀족 중심의 화려함을 엿보인다.
이 시기에 와토의 페트 질랑트는 전원을 배경으로 멀어지는 우아한 축제를 그린 그림을 보여 준다. 사치와 향수에 물들어있던 귀족들이 전쟁으로 인해 몰락하는 과정도 엿볼 수 있다.
프랑스혁명으로 인한 자유의 물결이 미국 독립 전쟁에 영향을 미치면서 나폴레옹은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시키고 또한 이탈리아도 분할 통치함과 아울러 스페인 왕실의 페르난도 7세를 축출하고 형 호세 1세를 왕위에 앉혔다. 이에 반발한 프랑스군이 저항을 벌이지만 스페인인에 대한 나폴레옹의 통치는 프랑스 시민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임을 말하고 있는 사실을 프란시스코 고야의 <이것은 더 나쁘다. 전쟁의 참화>로 알 수 있다. 고야는 이 그림을 통해 칼을 휘두르는 사람은 오히려 프랑스인이며 스페인 사회의 비민주적이고 봉건적 성격을 고발하고 있으며 스페인 귀족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외국 침략에 관대함을 드러내고 있다. 절대왕정에 반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물결은 민족주의를 탄생하게 만든다. 독일에서 낭만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빈 체제에 참여한 여러 나라들은 독일 통일을 원하지 않았다. 1817년 독일 최초의 애국적 대학생 단체 '부르셴샤프트'가 탄생하고 1818년 프리드리히가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통해 독일 통일의 의지를 엿보게 한다.
나폴레옹 3세는 독일 세력의 확산 방지를 위해 프러시아와 전쟁을 벌인다ㅡ보불전쟁ㅡ그러나 프러시아 황제 빌헬름 1세는 독일 해체의 아픔을 갚아주고 보불 전쟁 45일 만에 나폴레옹 3세는 붕괴된다. 이렇게 1848년 공화정이 시작되면서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자본주의 바탕 위에 농민의 가치를 발견하는 그림이 유행하게 된다. 밀레의 <만종>은 고흐에 영향을 끼쳤고 고흐는 진실되고 농부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그의 <감자 먹는 사람들>은 산업화에 대응하는 그림으로 인정받을 거라 확신했던 그림이다. 이후 역사의 무대에 노동자가 등장하게 된다.
<인상주의>는 자연의 한 순간을, 힐끗 쳐다보는 듯한 한 순간을 포착했다. 모네는 1837년 빅토르위고가 기차를 타고 가면서 바라본 듯한 낯선 광경을 묘사한 듯 <아르장퇴유 근처의 양귀비 들판>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인상주의는 제국주의 시대와 함께 한다. 이어 산업혁명으로 공장의 삶이 지루해지자 아름다움을 그리는 <유미주의>가 등장한다. 그림의 중심인물은 정강이가 잘리고 중앙에 우산 쓴 사람은 중요성도 의미성도 없는 그저 우연한 시각에 의해 표현된 <인상주의>를 넘어 산업화에 반발한 데카당스가 유행했다.
탐욕의 정점에 오른 제국주의ㆍ제국주의의 용어는 나폴레옹 1세와 3세의 로마 제국을 재현하는 의도를 품는다는 의미에서 쓰였다. 에밀 베르나르의 <세 인종>은 제국주의가 만들어 낸 상처이며 상품으로 나온 여성들이다. 남다른 신체 특성상 구경거리가 되어 노예로 팔려가고 그녀가 죽은 뒤 '인간'으로 결론 내리게 된 <자연사 박물관에 박제된 세라바트만 초상>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
<추상주의>는 현실과 단호히 결별하며 구상의 억압과 배제 위에 탄생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내적 필연성'이라 부르짖으며 칸딘스키는 "진정한 예술가만이 내적 필연성의 세계를 다룰 수 있다고 말한다.
추상주의를 뛰어넘는 뒤샹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망막회화는 끝났다'라며 '항공기 전'을 예고하기도 했다. 또한 이 시대의 예술가들은 예술 공동체의 보편성이 깨지는, 총체 회화를 꿈꾸며 정치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전쟁을 찬양했다는 것을 프란츠 마르크의 <늑대들:발칸 전쟁 1913>을 통해 알 수 있다.
'어떤 그림보다도 종교적 우위의 그림, 귀족의 풍요, 서민의 가난, 사랑, 이런 그림보다도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전쟁이다'라고 말한다. 로버트 파카는 총 맞고 죽어가는 장면을 여과 없이 내보냈고 재 2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파카 자신이 사진을 찍었다는 것에 논란의 진위가 있지만 이 사진은 전쟁 사진의 모범이 된다고 말한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히틀러는 모든 잘못을 유대인에게 전가한다. 독일 정신을 오도하는 퇴폐 예술전을 열었고 유대인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했으며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결혼도 금지시켰다. 또한 유대인의 토지를 몰수하고 식별을 표시하자 젊은 유대인이 독일 관료를 살해하기도 했다. 마르크 샤갈은 유대인 학살을 고발하는 <하얀 십자가>를 그린다. 유대인은 예수를 인정하진 않지만 고난 받는 유대인의 상징으로 예수를 등장시킨 것이다.
샤갈은 파시즘과 전쟁을 이겨낸 유대인의 예술 영웅이며 최고의 생존 작가다. 전쟁 희생자를 위한 기념관 <노이에 바헤>도 개관했다. 케터 콜비츠도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를 통해 강력한 반전 메시지도 전한다.
1985년 5월 8일, 서독의 대통령 바이체커는 인간을 멸시하는 나치 권력 체제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으며 "과거에 대해 눈감은 사람은 현재를 볼 수 없다. 비인간적인 일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다시금 그러한 위험에 노출될 소지가 많다."라고 말했으며 이는 독일의 성숙한 역사의식을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시대를 훔친 미술>은 단지 미술사가 아니라 그림으로 세계를 읽고 그림으로 인간을 읽는 역사서다. 르네상스와 프랑스혁명, 그리고 세계대전까지 인간 자취로서의 예술사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예술은 모든 인간의 언어를 넘어선 실체를 다룬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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