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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Nov 18. 2023

나는 진짜 바보짓을 했습니다

주차장을 헤매다


꼬불꼬불 지하 주차장을 서너 번 돈 후에야 겨우 그 애가 사는 동을 발견했다.  주차를 하려 빈 곳을 찾아 또 주차장을 여러 바퀴 돌았다.  돌다가 들어가려는 입구를  지나쳐버렸다. 이런 낭패가 있나. 땀 뻘뻘 흘리며 앞으로 뺐다 로 밀었다 하기를 여러 번, 주차장도 협소해 내 차를 세울 만한 장소가 마땅찮아 담벼락에 겨우 세웠다.  지나치는 차량이 불편하지 않게 세우고는 집 버튼을 누른다.  


새 집으로 이사한 아이의 집은 꽤 훈훈했다. 바깥공기가 겨울바람 마냥 차가웠지만 따뜻한 훈기가 위로가 되었다.  아이는 자신의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곳으로 왔다.  학교도 멀고 학원도 멀지만 자기 방을 갖는다는 것에 충분한 만족을 얻었다.  얼마나 갖고 싶었던 자기만의 방일까.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아빠가 태워주는 등굣길도 불편하지 않아 좋다. 아무도 없는 학교 마당에 젤 먼저 도착하는 서글픔도 견딜만하다 했다.  




이사한 지 일주일 밖에 안 됐는데 하자 투성이란다. 여기저기 손을 보시면서 너무 급하게 왔다 불평하시는 어머니 뒤로 아이는 머소를 머금은 채 자기가 도와주겠다 나선다.  아이의 자상함이 어머니를 위로한다.  그 아이는 엄마를 대하는 마음이 아이답지 않다. 어떨 때는 여느 어른들보다 참 지극하다 느낀다. 의자 하나 놓고 천장 들여다보는 폼이 중2가 아니라 듬직한 청년의 모습이다. 어머니는 하자  있는 세상에서 하자를 위해 책을 던져버린 아들을 보며 찐한 미소를 짓는다.


두루마리 휴지 한 통에 최소한의 예의를 다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현관문을 나선다. 엘리베이터가 세 군데 있다.  어느 것이 걸릴지 몰라 숫자가 적은 곳에 정차해 있는 버튼을 누른다.  이런~  40층을 올라가는구나.  부랴부랴 옆의 버튼을 누르려다 보니 먼저 내려가 버린다. 한 발 아니 두 발 늦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걸어내려갈까 고심하던 찰나, 딩동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출입문을 왜 이리 구분구불하게 해 놨을까. 기역자로 꺾어졌다가 다시 기역자로 꺾어져 나온다. 어라~  차가 없다.  어디로 갔지? 어디다 세워 놨지? 가 아니라 여기 세워 둔 차가 어디로 갔지? 그것이다. 분명 출입구는 맞는데, 담벼락도 분명 맞는데 차가 없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굴러갔을까.  난 분명히 여기 이 자리에 세워뒀는데.  대단한 낭패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내 차 앞에도 차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 차도 없다.  아니 그 차는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  



동 앞에 쓰인 숫자도 맞다.  그렇다면 다른 곳에도 출입문이 있단 말인가. 걸음이 빨라진다.  여기저기 움직이다 보니 덥다.  잠바를 벗어 들고뛰기 시작한다.  아무리 찾아 헤매도 내 눈엔 내 차가 보이질 않는다.  아~ 지정 주차  라인이 아니라 견인차가 해딱 들고 갔나 보다.  어떡하지? 아니야. 그 사이에 들고 갔단 말이야?  그럴 순 없어.  아, 분명 여기가 맞는데 도대체 내 차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바퀴가 있어서 진짜 굴러갔단 말인가?  정신을 차려보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중2도 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시간은 흐른다.  수업 시간을 놓쳐버렸다.  차를 찾느라 진땀도 빼고 시간도 뺏기고 미친 사람 마냥  혼자  중얼거리며 차를 찾아 돌아다닌다.   헤매는 나를 시시티브이가 보고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기 전에 찾는 게 더 빠르겠다 싶다. 분명 여기가 맞는데 아니 도대체 차는 어디로 갔단 말이야.


구세주가 나타났다.

"저기~  혹 출입문이 여기 말고 또 있나요?"

무슨 질문이 이럴까.  저기씨는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바라보며 구원의 눈짓을 보내고 있다.  


"삑 소리 나게 한 번 해 보셔요."

맞다.  리모컨이 있었지.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쩌나, 다시 뛰기 시작한다.  얼마나 헤맸을애태우고 있는 사이  저기씨가 다시 내려오더니 아직 못 찾았냐고 물으신다.  

지하 1층으로 가 보라는 말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런, 미친, 바보, 멍청이."



내려갔던 길을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계단은 컴컴해서 무섭다. 아니 몇 층에 차를 세워뒀는지 모르는 내가 더 무섭다.  들어갈 땐 닫혀 있던 출입문이  열려 있으니 망정이지 닫혀 있었다면 이 부끄러움을 어찌 감당했을까. 담벼락에 얌전히 붙어 있다.  견인차가 당연 끌고 가지도 않았다. 중년이 넘은 나이를 먹도록 도대체 뭘 보고 다니는 걸까.  왜 당연히 지하 2층이라고 믿었을까. 지하 2층이 아니었다면 왜 지하 1층으로 가 보리란 생각은 못했을까.


시야도 좁고 판단도 좁다.  무지한 나에게 나는 너무 관대하다.  진짜 바보 같은데 그저 웃기는 바보라 치부하고 만다.  


어두운 사위에 부끄러운 낯빛을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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