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린왕자 Nov 19. 2023

첫눈은 국화 향기에 스며들고

첫눈이 내렸어요

첫눈이 내렸다.

첫눈,

설렜다.


첫눈이 담긴 황토는 가을을 뚫고 나와 눈부시게 웃고 있다. 중력에 못 이긴 국화는  고개를 떨구고 차마 내치지 못하는 겨울눈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하루만 견디자. 하루만 앉았다가 가자. 국화를 깨우고 부레옥잠을 깨우고 눈 덮인 시골길 고요한 아침을 깨워 주고 가자.  돌담 앞에 놓인 절구야, 뽀얗게 흩날리는 눈송이를  바람으로 애써 날려  보내지 마라.



장독대의 표정 속에 어떤 미소가 담겼을까. 웃기는 할까. 그것마저 궁금하다. 커피 향기에 녹아나는 묘한 설렘이 눈 속에 피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아름답다.  아버지 무덤가에도 첫눈이 내렸겠지.  엄마의 품속에도 살포시 흰 눈이 젖었겠지.


아파트에 주차된 차들은 제각기 다른 하얀 옷을 입고  똑같은 모습으로 웃고 섰다.  


어머나, 차들이 모두 하얀색이네.

속고 말았던 것이다. 눈 비비다 마주한 덜 깬 의식의 눈초리는 잔망스러웠다. 스르르 녹아내리다  내 눈도 그대로 얼음덩어리로 굳어버렸다. 햇살이 조용히 내리쬐고 있다.


첫눈이 내린 이 아침은 상상의 세계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진짜 바보짓을 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