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ㅡㅡㅡ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하략
ㅡㅡㅡ윤동주 ㆍ1941년 11월 5일
전날 저녁부터 바람이 엄청 불었습니다. 태풍이 온다고 했거든요. 서울 가는 버스표를 예매해 놓고도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마어마한 태풍이 올 거라 했으니까요. 다음날 오전에 남해안 지방에 태풍이 상륙한다고 하니 서울 가는 날은 충분히 괜찮을 거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어쩌죠. 바람의 강도를 보니 서울 가는 날도 비가 내릴 것 같아 엄청 불안했어요.
당일 새벽, 알람보다 먼저 일어나 듣는 바람소리는 역시나 어마어마했습니다. 비도 내릴 듯했고요. 나서야 하나 어쩌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일단 챙겼습니다. 선글라스에 양산에 모자에 부채까지 한 짐 싸놓고는 또 망설였습니다.
쉬이 날이 밝아오지 않는 까닭은
아마 비가 오려고 그랬던가 봅니다.
나에게도 새로운 길입니다.
하여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은
하루를 온전하게 내게 주어지는 날이
쉽게 오지 않은 까닭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어떠리
바람 불면 어떠리
서울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피곤이 몰려오더군요.
버스 창으로 빗방울이 듣는 것 같았습니다.
일출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태양은 비추지 않더군요.
구름 낀 날이어도 괜찮아했습니다.
ㅡㅡㅡ 흰 그림자
황혼이 짙어지는 길목에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곳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ㅡㅡㅡ윤동주
한양길은 언제 와도 헤맵니다. 지하철에서 역을 찾다가 조금 헤매고 버스 기다리다가 어느 버스를 타야 할지 또 헤매다 도착한 곳, 젤 먼저 닿은 윤동주문학관입니다.
ㅡㅡㅡ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날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ㅡㅡㅡ윤동주
얼마나 자신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까요. 그 자신이 얼마나 미웠을까요.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도 자신을 성찰하며 극복해 나가는 시인의 강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영혼의 가압장, 윤동주 문학관
하늘, 바람, 별 그리고 시가 함께하는 공간, 그 418일간의 기록장 한 권을 구입하면서 윤동주 문학관을 나왔습니다.
이 길을 걸었습니다.
총칼 대신 저항시를 쓰며 나라를 지켰던 시인 윤동주를 생각하며 이 길을 걸어 언덕을 넘었습니다.
비 오듯 땀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윤동주문학관에서 언덕을 오르다 보면 청운 문학도서관이 나옵니다. 예쁜 돌길이 반겨주며 잠시 그늘을 만들어 주더군요. 인왕산 숲자락에 둘러싸여 장관 또한 빼어납니다.
잠시 들어가 앉아 책도 보는 여유를 누립니다.
물소리 바람소리 가슴을 뚫듯 시원스레 들립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시인의 가슴도 이렇듯 순수하고 맑았겠죠.
이름도 예쁘게 길도 예쁘게 돌아서 올라온 길이 아름답다 여길 때쯤 뛰어야 했습니다. 내려가야 할 시간이 안타까웠습니다. 서울을 벗어나니 비가 내립니다.
태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몸도 마음도 단단히 동여매십시오.
그리운 날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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