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이겼다, 유쾌한 점심 내기 한 판

이것도 추억이겠지

by 어린왕자


출처 네이버


서울살이 하는 작은아들이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날은 왠지 공허함이 깃든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몸만 쏙 빠져나갔는데도 이불속으로 다시 쏙 들어올 것만 같다. 이런 기분이 든 건 오래지 않았다. 부모 품을 떠나 타향살이 한 지 십 년이 되어가지만 들고나는 자리에 허전함이 남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메울 수가 없다.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 마음을 조금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올 때는 반갑고 가고 나니 허전하더라는 여느 부모의 마음이 내게도 스멀스멀 곪기 시작한다.


작은 아들이 내려왔다. 열흘 동안의 휴가를 받아 내려왔다. 몇 번이나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를 할까마는 그래도 온다고 하는 날은 반갑다. 며칠 전부터 마음은 바쁘다. 오는 첫날은 이걸 해 먹일까, 그다음 날 점심은 무얼 할까 고민도 잠시 제쳐두고 과일만 사놓을까 하다가 점심때를 맞춰 갈비도 재우고 갈치조림도 하고 더운 날 바빴다. 나도 오랜만에 토요일 하루를 쉬었다. 아들이 내려오면 아이의 기억에 남을 한 가지 엄마표 음식을 전해주고 싶은 욕심도 언제부턴가 생겼다.


꽃게탕도 좋고 버섯전골도 좋고 갈비도 좋고 혼자 살면서 평소 잘 먹지 못하는 음식을 특별히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엔 무엇이 먹고 싶은지 해 놓으마 문자를 보냈더니 콩밥은 싫단다. 그랬다. 늘 콩을 섞어 먹어도 별 말은 없었지만 콩이 싫었나 보다. 저번에 그냥 하얀 쌀밥이 먹고 싶다 해서 현미만 빼고 밥을 하려 했는데 이번엔 콩도 빼야겠다. 아들이 때론 상전임을 실감한다.


요즘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결핍을 모르고 자란다. 굳이 세끼 식사가 아니어도 집에서 해 먹지 않더라도 회사에서 모든 끼니를 해결한다고 하니 딱히 결핍이 있을까. 손가락 하나로 버튼만 누르면 먹고 싶은 거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전화해서 밥 먹었니? 뭐 먹었니? 끼니 거르지 마라 잔소리 안 해도 되는 말이지만 멀리 있는 엄마라 신경을 못 쓰니 그 말밖에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집에 내려오는 날에는 엄마가 만든 음식을 먹이고픈 욕심이 당연 있다. 객지 사는 자식들에게 집에 오고 싶은 명분을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은 내게 요구하는 것이 드물다. 나름 알아서 하는 편이라 어찌 보면 그런 것들이 내게는 소원함으로 다가온다. 대화의 끄나풀이 점점 엷어지는 느낌이 들어 서운함이 일 때도 있지만 아이들의 성향을 존중해 준다. 물어도 별 말이 없고 먼저 말을 하지 않으면 살갑게 다가오는 성격이 아니라 데면데면한 적도 많다. 공통의 주제를 찾다 보니 집에 내려오는 날 특별한 뭔가를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드는 것이다. 아이는 그냥 엄마가 해 주는 모든 걸 잘 먹는다. 먹는 양이 별 많지 않은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제 취향대로 해 주진 않더라도 거부 반응은 없다. 이번엔 제대로 물어보았다. 갈비가 먹고 싶다고 확실한 의사표현을 한다. 집에 내려와 머무르다 올라갈 때까지 네 식구 밥 한 번 제대로 같이 먹는 시간이 없긴 하여도 냉큼 갈비를 사러 갔다. 집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준비하려면 시간은 느긋하다.


때맞춰 온다는 시간을 넘겨 톡을 보내니 다 왔단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연신 볼을 비비며 껴안은 모습은 사랑을 넘어 애틋함의 표시를 서로 건넨다. 성대하게 차린 엄마의 한 상을 받은 녀석이 고개를 박고 먹는다. 그 모습을 흐뭇해하는 나는 역시 여느 엄마인가 보다. 그저 먹지 않아도 배부르단 말 맞다. 자기 방에 털썩 무거운 몸을 누인 위로 손을 뻗어 엉덩이를 한 번 쳐준다. 따뜻한 밥 한 끼가 흐뭇해진다. 저도 나도 주말엔 친구를 만나러 나가 늦은 밤에 얼굴을 볼지라도.


새벽 세 시가 넘도록 들어오지 않는 아들에게 들어오냐고 문자를 보내려는데 띠리리리리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술 냄새가 살짝 풍긴다. 이기지도 못하는 술에 꺼이꺼이 몇 번 토해내더니 곯아떨어진다. 이런 미친, 적당히 먹고 다녀라. 내일 광안리 바다 구경은 글렀다.


늦잠을 자고 난 녀석에게 해장국을 끓여 줄까 하는데 밖에 나가잔다. 고민 끝에 샤브집으로 갔다. 주말이라지만 가격이 너무 세다. 차라리 소고깃집이 낫겠다 싶을 만큼.


"오늘 형이 계산 할래?"

"네가 해라."

"ㆍㆍㆍㆍㆍ."

"엄마가 할게."


내가 계산할 거라 마음먹고 갔다. 돈 버는 이유가 그거 아니겠니? 먹고 싶은 거 돈 걱정 안 하고 먹으려고 돈 버는 거라며 엄마가 사야 할 명분을 만든 것이다. 계산을 먼저 말했던 작은아들이 자기가 산다며 씨익 웃는다. 먼 길 왔는데, 내게 상품권도 줬는데 당연히 엄마가 낼게 하는데 기어이 내겠단다.


"가위 바위 보 하자."


옆 테이블에서 웃음이 터졌다. 승패는 쉽게 나질 않았고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음을 느낄 때쯤, 작은아들이 당첨됐다. 유쾌한 웃음을 날린 점심 값은 그 녀석에게 부담으로 다가갔을 터지만 역시 얻어먹는 밥은 맛있다.


열흘 간의 휴가 중에 미리 예약해 둔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비도 많이 온다는데 바다 수영을 한다는데 또 걱정이 앞서는 걸 어쩔 수 없이 숨기고 만다. 조심해서 잘하겠지. 이제 엄마에게 얼굴 잠시 보여주는 건 그저 예의로 여긴다. 친구가 없으면 부모집도 내려오지 않게 될까 봐 걱정되지만 그건 또 그때의 감정에 충실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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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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