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웠던 그날을 떠올린다

어리석고 미숙했고 그래서 아픈

by 어린왕자


두 아이를 키우면서, 두 아이가 커 가는 모습을 보면서, 바지런하지 못했다는 작가는 고스란히 옛 기억을 떠올린다. 그럼에도 두 아이는 바지런하게 컸고 그런 아이들을 성실하게 사랑하고 반갑게 환대할 의무를 느껴가고 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어주던 때에 시작한 글이 아이가 지금은 어느새 훌쩍 자라 자신의 허리춤보다 더 컸다. 약간의 아쉬움도 있고 그만하면 잘했다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부끄러움도 있다.ㅡ <서효인 산문집ㆍ그림책 생활> 중ㅡ


사랑의 방법이 좀 미숙하고
좀 어리숙하면 어때.
좀 부끄러우면 어때.
사랑의 방법은 기어코 무한대며
조금이라도 쓸 만한 기억으로 남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을까.

아이들로 인해 또 사랑을 배워간다.


내 아이들이 어렸을 적 나도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담으려 애썼다. 갓 태어나 부모를 기억해 가슴에 담느라 올망졸망 눈동자를 굴리던 때.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세상 구경 시켜준다고 뙤약볕에 안고 나가 저도 힘들고 엄마인 나도 힘들었던 때. 뒤집기 하던 날,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환호성 지르던 때. 그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도 읽어 주고 레고 놀이로 함께 성도 만들고 때론 놀이터에 나가 모래놀이도 함께 했다. 그사이 아이도 자랐고 엄마인 나도 자랐다. 실수투성이였다. 아이가 아파 울 때는 초보 엄마인 나도 어찌할 바를 몰라 함께 울었던 날도 많았다. 어느덧 자라 많이 컸다. 성장의 속도가 빠르다. 돌아보면 모두가 서툴렀지만 보람 있고 의미 있고 즐겁고 아름답고 황홀한 순간들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이가 한 대 맞고 왔다. 학원버스를 타고 있는 아이들에게 무슨 말인가를 했다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로 인해 차에 타고 있던 아이가 지나가는 내 아이의 머리를 때렸다는 것이다.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던 내 아이에게 엄마인 나는 화가 났었고 누가 그랬는지도 모른다는 아이에게 더 화가 났었다. 때린 그 녀석이 나쁘다는 것을 말해 주지 못했고 오히려 이상한 말 하고 다니지 말라며 내 아이를 추궁했었다. 다른 아이를 때리지 않은 것에 칭찬을 해 주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아 있다.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 전후 사정을 차근차근 알려고 하지 않았던 내가 바보였고 어리석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간다. 그때 알았더라면, 그때 현명한 처신을 했더라면 아이를 가르치고 기르는데 후회는 없었을까.


아이가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에 무한한 희망이 있고 그의 사랑이 있었을 것이고 그의 미래가 있지 않았을까.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불편해했고 어깃장 놓으며 닦달하진 않았을까.

아이가 노래를 불렀다. 음치인 엄마를 닮았는데 왜 저 모양일까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나 정성을 다해 불렀는지, 그나마 칭찬이라도 듣고 싶었을 텐데. 왜 못 한다고만 했을까 한없이 부끄러웠다.

아이가 책을 읽었다. 또박또박 읽지 못한다고 화를 냈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쥐어박았다. 아이는 무한히 노력하고 있었는데.

왜 그땐 아이가 보이지 않았을까. 무한히 노력하며 자기 삶을 충분히 살아내려 애쓰고 있었는데. 엄마 욕심이 지나쳤다. 아이를 조금 특별나게 키우고 싶었던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자기가 안고 있는 그릇은 이것인데 이것보다 더 큰 저것까지 요구하고 있었으니 엄마의 과욕이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책을 통해 내 아이에게 맞는 이야기를 해 주고 모자라는 내 아이의 특성을 알아봐 줬더라면 하는 후회도 당연 있다. 못 하면 다음에 잘할 거야 희망 섞인 고문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감당하기 힘든 고문을 했으니 지금에라도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하고 산다.

그럼에도 아이도 분명 서운한 건 있으리라. 따지고 싶은 것도 있으리라.


아이에 대한 글을 쓰려니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일만 떠오른다. 지금에서야 다시 어린아이를 키운다면 부끄러움 없이 잘 키울 수 있을까 의문스럽지만 ㆍㆍㆍ.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남들보다 더 잘하라는 부담을 아버지로부터 많이 받았다. 아버지가 짓누르는 부담감에 어린아이들을 엄마는 그저 말없이 감싸 안으셨다. 혼내는 틈을 타 아버지에게 잔소리하기 바빴고 아버지는 또 그런 엄마에게 화를 냈고 우리는 그 사이 대문 밖으로 줄행랑을 치며 놀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누군가 한 사람이 억누르면 한 사람은 부드러워져야 한다는 것도 내 아이들이 크고 나서 깨달았다. 내 방식이 맞다고 다그쳤던 것이 실상은 알고 보면 허점 투성이었고 자기만족의 잘못된 방식이었음을 미처 몰랐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일들을 엄마가 되어 엄마에게 배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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