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보며 아버지를 그리다
죽어서도 인생을 즐겁게 살 수는 없을까? 이미 지난 방송이지만 MBC에서 했던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보던 중 죽은 인생을 산 인생들이 슬퍼해 주고 기꺼이 즐거워하는 어느 나라의 장례문화를 접하니 죽음이 꼭 슬픈 일만은 아닐 수 있구나를 실감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관습과는 많이 달랐으며 그 나라는 죽은 사람을 땅에 묻었다가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꺼내 가족의 품에 안겼다가 다시 매장을 하는 문화인 듯했다. 내가 본 화제의 장면은 산 자의 집 근처에 죽은 자를 묻은 무덤이 있었고 7년 동안 땅속에 묻혔던 시신을 꺼내 가족들 품에 안겨주는 장면이었다. 가족들은 죽은 가족을 다시 만난 기쁨에 오열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즐거워하기도 했다.
시신이 자녀였으면 가족들은 더 슬퍼한다. 부모라도 마찬가지다. 다시 꺼낸 시신을 품에 안으며 때론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슬픈 건 슬픈 거다. 기쁜 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즐거워한 것이지 슬픔은 슬픔이다. 다만 그 슬픔을 오랜 시간 승화해 기쁨으로 표현해 내는 것임을 안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낯선 나라 마다가스카라의 장례문화 <파마디하나>. <파마디하나>는 죽은 자의 의식이라는 마다가스카라의 전통 장례의식이다. 가족을 떠나보낸 가족들은 시신으로나마 그리움을 전하고 위로를 받고 애틋함을 전했으리라. 천에 싸인 시신이지만 만지고 싶고 만져보고 싶고ㆍ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깨끗하고 새로운 천에 다시 싸서 그대로 또 땅에 묻힌다. 언제 꺼내볼지 모르지만 다음을 위해 희망을 포개두는 것이다.
꺼낸 시신을 다시 넣을 때 한 글자씩 천에 새겨보는 그리움. 다시 무덤 안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몇 년 만에 다시 만져보는 어떤 그들만의 원초적인 그리움에 대한 표현. 지켜보는 사람들은 때론 춤추고 때론 웃기도 하고 각각의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다 같이 애도하는 시간들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무덤 두지 마라 하셨다. 간경화로 병원에 계시다 유난히 밝은 얼굴로 집에 가자 하셨다. 다 나으신 듯.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고 나는 아버지의 의중을 몰랐고 쾌차하신 줄 알았다. 그리 살가운 딸이 아니었기에 병원을 더 이상 들락거리지 않아 좋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 당신은 병원비가 쌓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가만히 누워 있는데 남아 있을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던 것이었다. 몰랐다. 모두가 몰랐다. 퇴원하신 아버지는 그 후로 온 집을 손보기 시작했다. 지붕이 새면 마감재를 덧대 지붕의 구멍을 막았고 화장실의 받침대를 손봤고 휘청거리는 대문을 손보셨다. 인사하는 친구에게 마알간 얼굴로 화답도 보내셨다.
남아 있는 자들에 대한 마지막 인사였던 것이다.
아버지 무덤은 없다. 당신이 부모를 돌보지 않았고 먼 길 있는 무덤을 찾지 않았기에 당신 자식들이 당신 무덤을 돌볼 수 있을까 걱정하셨다. 먹고살기 바빠 먼 곳까지 발걸음 하지 않을 것이라 앞을 내다보셨던 것일까. 어느 깊은 산속 아버지의 흔적을 뿌리고 오면서도 그때는 몰랐다. 찾아갈 곳이 없어 슬퍼할 것이란 사실을. 친구에게 화답을 보낸 아버지의 마지막 인사가 내겐 가슴 아프게 남았다.
그리워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지만 그리움의 깊이는 깊다는 것을.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땐 오늘처럼 하늘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