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을 훔친 도둑을 잡았다

초보 농사꾼에겐 버겁다

by 어린왕자


싱싱하던 호박이 말라비틀어져 간다

입추가 지나고

처서가 지나도

한여름의 뙤약볕은 사그라들 줄 모른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야

상춧대도 걷어낼 것인데

뙤약볕이 누그러들어야

호박줄기를 걷어낼 텐데

입구가 막혀 들어갈 수 없어도

아직은

손을 쓸 수가 없다


덥다


애호박이 커 수확을 할 때쯤

애호박이 사라졌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따 먹었나 보다

아니

그냥 따먹어도 괜찮다 여겼는데

그 많던 호박이 며칠 째 하나도 없다

생각해 보니 좀 괘씸하다

주인 먹을거리 한두 개는 남겨둬도 좋을 텐데

모조리 없어지니 슬슬 화가 났다

결국

호박을 따 갔다고 생각한 범인을 잡았다

호박은 호박을 훔쳤다


한 줄기에 호박이 여러 개 자라니

먹을 게 없어 서로 클 수가 없다고 한다

영양분이 모자라 크다 말라버린 걸

나는 누군가 따 갔다고 짐작했다

몹쓸 인간들 욕만 해대면서

이 더위에 고생한 대가가 이것이었냐 했는데


호박이 호박을 훔친 걸 몰랐다

그대로 썩어 떨어진 줄 몰랐다

괜한 오해를 했고 의심을 했다

더위만 아니었다면

위로가 되었을까


호박줄기를 걷어내려 갔다가

다 큰 호박 하나를 따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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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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