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짜지
호박 한 덩이가 자기 집을 뚫고
남의 집 모서리에 덩그러니 앉아 있다
아뿔싸 호박 넝쿨이 이미 도로를 만들고 있고
제 집인 양 뒹굴뒹굴 굴러 떡 하니 무릎 꿇고 앉았다
어찌할 거나 이 일을
주인아저씨! 무단침입한 저 놈을
그냥 따 가셔도 돼요,
불편하시면 호박 넝쿨을 걷어내셔도 돼요,
저도 모르게 가출한 놈이니 혼내셔도 되고
아니면 뚫고 나간 자기 집으로 넘겨주셔도 돼요.
그런데 또
자기 집도 아닌 곳에 앉은 놈 위에
기생하려 하는 저 놈은 뭐지
스멀스멀 기어가는 벌레 같은데
나는 처음 보는데
저 녀석은 뭐지
호박 갉아먹는 놈인가
아니면 제 집 찾아가는 길에 놓인
장애물을 넘는 놈인가
비가 온다
천둥이 치고 우르르 쾅쾅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오려나보다
해묵었던 여름 대지를 적시고
손길 놓아둔 여름 텃밭에
말갛고 시원한 가을이 덮어지고 있다
ㅡㅡ어제 친구가 텃밭에 왔다가 상추를 다 뽑아내고 가을걷이를 하고 갔다. 호박 몇 개와 고추, 가지를 놔뒀으니 시간 내서 따 가라 한다. 충만한 하루를 보내기에 족한 먹거리다. 잠시 촉촉하게 비가 내리다 그쳤다. 갈증 난 한여름의 뙤약볕을 식혀주진 못했지만 목말랐던 대지를 적셔주기엔 그나마 충분했다. 선선한 가을이 불쑥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