놔둬라! 가을이야, 노랗게 물들었잖아!

가을이 얹힌 여름이라 버리지 못한다

by 어린왕자


누렇게 메말라간다고 죽은 게 아니에요

말라비틀어졌다고 생명을 다 한 건 아니에요

아직은 초록이 깃든 호박잎을 마른눈으로 바라보다

더는 초록으로 변할 수 없음을 알더라도

아직은 걷어내지 않았어요


고춧대를 걷어내고 배추를 심었어요

고추를 따 낸 고춧대가 쓰레기로 변했어요

마땅한 버릴 곳이 없어 담벼락 아래 줄을 세웠어요

경계가 생겨버린 곳에 인심이 사라졌어요

옆집 아저씨는 철망으로 기둥을 세우고

선인장으로 바닥을 덮어놓아

지나다 치맛단이 긁혀 불쾌했지만

그의 자리는 그럴 수 있다 여겼어요

너와 나를 가르는 경계에

누렇게 뜬 호박잎이 있어요

그건 걷어내면 될 거라 여겼는데

걷어내지 못한 경계는 가슴 아픈 일을

때론 만들고 말아요

호박은 아직 열매가 많아요

호박잎 언저리에 맺힌 주먹 크기의 호박이

그래도 다음 발걸음을 하게 만들어요

누렇게 뜬 호박잎을 잘라내려는데


"놔둬라, 노랗게 물들었잖아, 가을이야"


엷은 한마디에 가을을 남겼어요


"얼마나 이쁘니! 노랗게 물든 가을"


손으로 뜯어내고 가위로 잘라내도

누렇게 뜬 호박잎은

어린 가을 호박을 감싸는 따뜻한 품이었어요

아직 잘라내면 안 되는 거였어요

아직 여름이 붙어 있고

가을이 다가와 물들고 있어요

그것이 가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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