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린왕자 Nov 23. 2023

아지매, 긴 세월 어찌 지내셨능교

오래된 날의 인연


얼굴이 얽었다고 남편이 맨날 구박했다. 그놈이 때렸다고, 그날도 맞았다고 아지매는 우리 엄마를 찾았다. 무슨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아지매와 우리 엄마는 쌍으로 앉아 욕을 해댔다.  미친 인간, 지는 머 잘났다고. 인물 뜯어먹고 사나, 못난 인간. 귀신은 머하노, 저런 거 안 잡아가고.


곰보라고 때린다 했다.  곰보째보라 부른다 했다.  아지매의 얼굴은 얽었다. 나는 그 아지매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처음엔 솔직히 징그러웠다. 어린 나이에도 그 아지매가 우리 집에 안 왔으면 했다.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강산이 서너 번 바뀌고도 더 흘렀다.  


 아지매는 당찼다. 엄마 말대로라면 그리 얻어터지고도 씩씩했다는 표현이다. 어린 내가 그때 뭘 알았겠냐마는 우리 아버지도 만 드시면 곤조를 부리셨다. 그 당시  아버지의 파워는 대단했다. 그러니 아마도 엄마와 쌍으로 욕지거리를 했나 싶다.  제정신으로 듣고 있던 아버지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셨다.


 아지매 집은 우리 집에서 한참을 걸어 빨래터가 있는 산 밑 근처에 있었다.  빨래를 하러 가면 그 집에서 고구마를 먹었고 감자를 먹었다. 나이 많은 언니도 있었는데 언니에 대한 기억은 다.  나보다 훨씬 어리다고 한 여동생이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을 붙여 ㅇㅇ 아지매라 불렀다.  그 아지매가 그때는 참 불쌍하다 여겼다.  




엄마 집을 지나다가 선조 어서각을 들르기 위해 길가에 차를 세웠다. 마침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장터를 꾸미고 있었다.  가을빛에 아이들은 빛났고 햇살에 온통 마을이 붉었다. 올망졸망  가을빛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선조 어서각


어서각으로 오르는 계단에 노인 두 분이 앉아 계신다. 낯익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가갔더니 먼저 알은체를 하신다.  


"ㅇㅇ이예요.  혹 ㅇㅇ 아지매 아니신가요?"

"그래, 맞다.  안 그래도  했다."

"아이고,  이쁘게도 컸네. 어쩐 일이고?"


손을 덥석 잡으시는데 건강하신 모습이다.  얼마나 목소리가 또랑또랑 하신지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건강하시군요. 다행입니다."


아지매는 엄마 이야기를 냉큼 끄집어내신다.  

안 그래도 병원을 한 번 찾아갔는데 듣고도 잊어먹어서 어느 병원인지 몰랐다고.  


그러실 만도 하지.  엄마보다 젊으셔도 어느덧 아흔을 바라보시는데  병원 이름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지. 듣고도 까먹는 게 대수다.  


"안 그래도 오빠한테 들었어요.  찾아 주셨다고."




오빠는 아직도 엄마가 살던 곳의 대소사를 챙긴다. 가끔 내 뜰에 잡초가 얼마나 자랐나 가늠해 주기도 하고 지팡이 짚고 가시는 어르신 손도 한 번 잡아드리고. 고향에 터를 묻으러 들어온 동년배도 챙기는 살뜰함을 보인다.  그래서 아셨나 보다.


용돈이라도 몇 장 쥐어드리고 싶은 마음에 가방을 열다 멈칫했다.  괜스레 동정 어린 치기를 부리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웠다.  옆에 계신 어르신은 아무리 봐도 낯설다.  알았다면 ㅇㅇ 아지매가 먼저 아는 체를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다정한 모습으로 앉아 계시는데  연신 미소를 지으신다.  어찌 예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엄마가 저기 앉아 계신다면 미친 인간이라 욕 해대며 맞장구쳤을까.  하도 욕을 해대서 더 할 욕이 없으셨을까.  


아지매의 얼굴은 고우시다.  곱게 화장을 한 모습이 고우시다.  아이들의 잔잔한 웃음소리에 아지매의 흩날리는 웃음이 묻혀도 또한 예쁘다.  왜 남편은 아지매를 곰보라 하셨을까. 아지매의 남편도 어른이었을텐데, 택도 아닌 가부장이라 여기시며 곤조를 부리신 걸까. 길었던 가난한  세월이 야속하다. 아지매의 얼굴은 세상에서 젤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다.


"영감은 벌~~~써 갔다."

묻지도 않았는데 아지매는 아지매의 긴 세월을 쏟아내신다. 가을 햇살은 그 푸념을 담아내기에 충분하다.


혼자 사신 삶이 피로하셨을까.  아니면 곪은 상처 뜯어내고  새로운 힘을 얻으셨을까.  모르긴해도 힘겨운 삶을 이겨내고 자식들도 그럭저럭 밥 먹고 사니 이 좋은 세상 즐기고 계시리라.  나를 어루만지듯 쓰다듬는다,  당신 자식마냥 보드랍게.  




가을빛은 푸르고 바람은 따뜻하다.  소상하게 기억해 주시는 아지매의 오래된 추억이 가을빛에 녹아난다.  뵙자며 돌아서는 내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또 언제 뵐 수 있을까.  아지매를 만나 엄마를 떠올렸고, 이토록 긴 시간 엄마를 그리워하며 글을 쓰고 있는데 다시 뵙긴 힘들겠다.


"아지매, 건강하셔요."

"그래, 니도 건강해라."


젊은 청춘이셨던 아지매가 중년을 넘어가는 나에게 건강을 당부하신다. 지난한 삶을 살아낸 우리네 아지매의 등뒤로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포개진다.


부디, 어머니, 건강하셔요.




작가의 이전글 지난날이 잠시 부끄러웠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