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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밤

나의 추억거리가 된

by 어린왕자

몰밤도 아닌 것이 연도 아닌 것이



몰밤을 아시나요

마름모 모양으로 생긴 수생생물입니다

강가 언저리에 가득 몰려 있어

그물이나 갈퀴로 긁어모아

건져 올리면 되지요

이것으로 무얼 하냐고요

우리는 어릴 적 그것을 삶아 먹었지요

밤 삶듯이 삶아 먹으면

밤맛이 나요

밤도 아닌 것이 밤맛이 난다니 의아하죠


몰밤은 마름과의 한해살이 풀로

여름에 흰 꽃이 피고

열매는 식용으로 가능하지요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우리는 친구와 함께 조만강으로

몰밤을 따러 갔지요

한 시간을 걸어서 갔다

또 한 시간을 걸어 되돌아오던 길

비료포대를 하나씩 들고

갈쿠리를 옆에 끼고

전쟁에 나가는 전사의 모습으로

비장하게 그것을 긁으러 갔지요

엊그제 친구와 찾은 카페에서

어렴풋이 그것과 닮은 것을 보았지요

밤이라 확신할 수 없으나

아마 그것은 몰밤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러나 강가 언저리에 앉아 있는 그것이

문득

나를 성장하게 해 준 삶의 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참 많이도 긁어모아

일용할 양식으로 버텼는데

지금은 왜 모를까요

세월이 흘러 몰밤의 모양을 잊었을 수도 있고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린 세상에서

당연히 기억 저편으로 밀려났을 수도 있고

아무튼 어린 시절의 기억 한편을

곱게 장식하며 버티고 있는 몰밤은

조만강이 흐르는 한 잊히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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