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여행기
호주에서의 첫날밤은 여느 밤보다 피곤했다. 그러나 정작 깊은 잠에 빠져들진 못했다. 첫날의 여독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상사태가 생긴 것이다. 가이드의 유연하지 못한 부주의로 나의 캐리어가 망가졌지만 내일 아침 어떤 액션을 취하겠단 말이 책임감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여 기분이 다운되었던 탓도 컸다.
이른 아침 조식은 먹을 만했다. 평소 아침을 잘 먹지 않지만 이다음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지 몰라 굶는 게 처사는 아니었다. 커피와 과일을 곁들인 아침은 든든했고 여행지에서는 항상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더 나은 여행을 할 수 있겠단 느낌을 받았다. 더 큰 기대를 안고 하루를 시작해 본다.
세계 3대 와인 산지로 유명한 호주의 와이너리는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았을 것만 같은 드넓은 포도밭이 펼쳐진 곳에 있다. 그곳에서 만들어진 와인은 한여름의 따가운 햇볕과 바람을 견딘 포도들로 만든 예술품에 가깝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이곳 와이너리에서는 와인 한 모금 정도 입에 담고 향기를 느껴볼 만하다.
포트스테판의 머레이즈 와이너리에서는 호주의 햇살을 담은 20여 종의 와인을 만날 수 있는데 초보자들도 쉽게 맛볼 수 있는 달콤한 종류가 많다.
와인 시음장에서는 네 종류의 와인을 맛볼 수 있는데 화이트 와인이 젤 깔끔하고 맛있었다. 부어주는 대로 홀짝홀짝 마셨더니 취기가 돌았다. 건너편에서 점심으로 먹은 스테이크는 질기고 퍽퍽해서 거의 대부분을 남겼다. 아침을 먹은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라 배고픔이 덜했던 탓도 있었다.
모래썰매. 샌드 보딩은 생각보다 스릴이 넘치진 않는다. 평상시에는 모래가 뜨거워 맨발로 걷기 어렵다 하는데 우리가 간 날은 오전에 비가 내렸던 터라 뜨겁진 않았다. 평소엔 모래가 뜨거워 제대로 밟지도 못하며 그래서 양말을 신어야 한다고 했다. 내려올 때 짜릿한 스릴감이 덜 해 더 타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진 않았다. 어린 시절 비료포대로 탔던 눈썰매가 그리웠던 탓일까. 제대로 즐거움을 만끽했다. 마치 두바이 사막 같은 스탁톤 비치에서 25미터의 내리막 언덕을 질주했다.
신나게 샌드 보딩을 즐기고 돌고래가 춤을 춘다는 바다로 향했다. 야생 돌핀 크루즈 여행이다. 이곳 호주 시드니의 청정한 곳에서 헤엄치는 돌고래의 몸짓을 만나고 싶었다. 즐거움으로 가득한 곳, 짙푸른 남태평양을 항해하며 약 1시간 여 동안 천천히 물 위를 걷다 보면 굳이 돌고래를 보지 않더라도 마음까지 정화되는 기분을 간직하게 된다. 굉장히 매력적인 곳이다.
오늘 저녁도 한식이다. 이곳 시드니에는 한국사람들이 많이 정착해 산다. 또한 관광객 대부분도 한국 사람들이 많다. 호주 경제를 어쩌면 한국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낯설지 않은 곳이다. 웅성거리는 곳을 쳐다보면 거기엔 한국 사람들이 떠들고 있고 한국 사람들이 서 있다. 이곳 식당 이름도 한국어로 적혀 있고 한국 사람이 운영하고 알바도 한국인이다.
호주는 외국이라고 느끼기 쉽지 않은 곳이다. 어디든 한국 사람이 있어 그런지 마음 힘들지 않다. 무언지 모를 지원군을 얻은 것처럼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