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여행자 몽도>ㅡ르 클레지오
르 클레지오의 단편집 <어린 여행자 몽도>를 읽으면서 걷는다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각기 걷는 이유는 다르지만 어딘가 늘 혼자 걸어가는 사람, 어린 여행자 몽도는 왜 혼자 걸어 다닐까? 발목을 묶는 푸른색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조금 크다 싶은 초록색 티셔츠를 입은, 언제나 똑같은 차림의 몽도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또한 어디로 가는지, 가족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아이다. 몽도는 이 도시에 무엇을 하러 어디를 찾아가고 있을까.
<어린 여행자 몽도>는 어떤 틀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을 즐기며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사는 8편의 이야기를 모은 단편 소설집이다. 순수하고 순박한 아이들을 통해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르 클레지의 작품 세계를 지향하는 세계관이 뚜렷이 나타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여러 도시를 거쳐 바닷가로 돌아온 아이 어린 고아 소년 몽도. 새 자전거를 타고 밖에 나온 날 학교 가던 길에 항상 보던 신이 사는 레다르바르뮈르 산에 오르기로 결심한 종. 메마른 사막에 물을 흘려보내고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물레 돌리는 소녀 쥐바, 매일매일 바다를 꿈꾸다 어느 날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다니엘. 사막을 헤매다 어린 목동을 만난 가스파르는 그곳 사막에서 염소와 양을 지키며 자연과 함께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몽도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곳들을 찾아다닌다. 여러 친구들을 만나도 말을 건네지 않는다. 심지어는 자신을 양자로 삼고 싶지 않느냐 물으면서도 달아나 버리기도 한다. 혹여 나이가 몇이냐 어디 사느냐 물을 땐 모른다고 답해 버리는 아이다.
몽도가 가는 곳은 어디인지 모른다. 바다를 좋아한 몽도는 바다를 만났고 바다 끝에 서서 낚시하는 사람 지오르당을 만나 홍해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에 만나면 글자를 가르쳐 준다고 한 노인.
날씨가 좋은 날 몽도는 방파제 밑에서 나와 또 걷기 시작한다. 목적지 없이 걷다가 언덕을 만나고 그 언덕을 오르다 '황금 햇살의 집'앞에 닿았다. 너무 많이 걸었던 탓일까. 몽도는 자기가 알고 있는 온갖 은신처와 방들을 떠올렸다. 홍해까지 가고 싶었던 몽도. 하지만 이제 두 다리가 이상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몽도를 스쳤던 많은 사람들이 몽도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해와 달과 날들이 흘러가듯이 몽도도 어디론가 흘러갔다.
산을 바라보고 있는 종. 육중한 몸집이 골짜기에서 바다까지 뻗어 있고 뒤에는 거대한 빙벽이 있고, 그 산은 어떤 산보다 아름다웠으며 그 어떤 산보다 크고 깨끗한 산, 종은 그 산을 향해 걷는다. 이유는 알지 못한다. 늘 보던 산이었고 어디서든 보이지 않는 곳은 없었다.
순전히 종이 그 산까지 가볼 마음이 생긴 건 햇빛 때문이었다. 아름답고 감미로운 바람과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흰나비들의 향연, 살아 있는 것은 오로지 그것들이었다. 그러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온몸으로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산을 향해 걸었다. 암벽이 보였다. 무섭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던 미지의 시선이 종을 위쪽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드디어 산 정상에 올랐다. 그곳에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따뜻한 품속이다.
걷는다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의식이다. 걸어서 걸어서 만나게 되는 자연 친화적인 세계.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걸어가지만 결국 닿는 곳은 바다와 산, 원초적인 본능의 몸짓을 움직이게 하는 자연이다. 또한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다시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와 바람과 바다와 숲과 동물들과 친구가 된다. 비록 또 길을 잃고 헤매게 될지라도.
그러나
걷다 보면 목적 있는 삶이 될 수도 있다.
목적 없는 삶은 없다지만
걷다 보면 바다에 닿고
산에 닿고
또 돌고 돌아 원점이 될지라도
걷는다는 것에 목적을 둔다면
충분한 여행이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