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운 이야기 하나

대만 타이베이 공항에서

by 어린왕자
타이베이 101


올해 봄.
타이베이 여행 마지막 날 출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김해공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 편의 수화물 부치는 개찰구를 확인해 놓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기다리는 시간에 그냥 앉아 있기 아쉬워 선물도 사고 양치도 하고 소파에 기대앉았다가 여유를 부렸다. 이제다 싶어 넉넉하게 두 시간 전에 가서 입국 수속을 위해 줄을 서기로 했다.

면세점은 이미 대부분 닫혔고 아직 영업을 하고 있는 곳에서 쫀득쫀득 찹쌀떡을 사기 위해 바디랭귀지로 겨우 샀다는 친구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에 한바탕 웃고 나니 피로가 조금 풀렸다. 일단 공항에 들어선 순간부터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터라 피곤함도 별거 아니라 여겼다.

여행의 묘미는 선물인데 나는 그다지 선물을 사지 않는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나라의 맛있는 과자를 사 먹을 수도 있어서 굳이 부피가 큰 것을 담아가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리고 과자를 사 가도 먹을 사람이 없어 식탁 위를 굴러다니다가 결국엔 버려지는 것들이 많다. 친구들이 남은 선물을 사기 위해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슬슬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

미리 봐 둔 7번 라인으로 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빨리 줄을 서 있었나 싶어 미리 올 걸 그랬다며 또 웃었다. 친구는 캐리어 무게가 많이 나가 요금을 더 내야 할지도 모른다며 무게를 달아보기 바빴고 무게가 초과하면 무얼 꺼낼까 미리 걱정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캐리어 무게를 재느라 분주한 모습도 보였다.

많은 사람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서 있는 줄이 7번이 맞냐며 짧은 영어로 맨 뒤에 서 있는 관광객에게 물어보니 7번 줄이 맞단다. 제법 긴 줄이 그래도 꽤 빨리 줄어드는 것 같다고 느낄 때쯤 안면을 트고 있었던 대구 관광객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이 줄이 부산으로 가는 줄이 아니라고 했다. 엥? 이게 실화였을까요?

그랬다. 부산으로 가는 건 맞는데 항공사를 보지 않았던 것이다. 7번 줄만 찾았지 비행기 편은 물어보지 않았고 당연히 그 줄이 맞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맞은편에 또 다른 7번이 있었다. 두 7번 사이에는 가느다란 줄 하나가 양 편을 가르고 있을 뿐 가까이 다가가서 보지 않으면 갈라놓았다는 것도 알 길 없던 터였다. 아~~~길게 늘어선 한 줄!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는 엉뚱한 곳에서 엉뚱하게 시간을 허비했던 것이다.

세상에 우리는 그 긴 시간을 제스타 항공에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입국할 땐 제주항공의 관광객이 별 없었는데 입국할 땐 많을 걸 보고 좀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냥 의아하다고 여겼을 뿐 또 다른 곳에 사람들이 서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던 것이 실수였다. 친절하게도 아가씨가 가르쳐 준 곳은 내가 서 있던 줄이 아니라 막힌 줄 아래를 기어들어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부산으로 가는 줄은 다시 줄을 뛰어넘어 건너와서 대기해야 했다. 일직선으로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놨으니 뒤에 선 우리들은 앞이 막힌 줄도 몰랐던 것이다. 아뿔싸, 다른 비행기를 탈 뻔했다.

머리 넷이 모여도 영어가 짧아서 웃고 말았지만 대구의 친절한 아가씨 아니었으면 우린 얼마나 긴 시간을 헛되이 보냈을까. 아니면 혹여나 다른 나라로 날아갔을지도 모른다며 한편으론 창피스럽기도 했다. 역시 우리나라 좋은 나라, 우리나라 인심도 또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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