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을 우체국 앞에서 한걸음 멈춘다
아직 물들지 않은 단풍나무들이
수십 년 터줏대감이 되어 지키고 섰다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날 듯 가볍다
빠알간 우체통 앞으로
발걸음을 돌리다 잠시 머뭇거리는 동안
오래된 연인이 보냈을 편지 한 통을 기다리며
오지도 않을 그리움만 붙잡고 섰던
조각조각 파편이 모여 하얗게 붙어 있는
부치지 못한 편지 하나를 발견한다
햇살이 내리쬐는 거리 한편에
붉은 우체통 하나에 가슴이 떨려
해묵은 발걸음이 묻힌 것도 잊은 채
한달음에 달려 그 앞에 섰다
시절인연으로 서로를 기다리던 마음이
이토록 붉게 물들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 서서
부치지 않은
오지도 않을 그의 편지를 기다리며
마음도 단풍처럼 붉게 물들어간다
ㅡㅡㅡ가을 우체국 앞에서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