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까 말까 망설일 때는
어느덧 원서를 쓰는 계절이다. 자소서를 쓰든 대입원서를 쓰든 또는 기업에 취직을 위한 원서를 쓰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올 한 해 자신이 잘한 일을 테스트해 보고 평가받을 수 있는 시기다.
이맘때 대입수능을 치는 회원도 있고 특목고를 가기 위해 자소서를 쓰는 아이도 있다. 자소서는 대부분 회원들이 잘 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가끔 봐주십사 하는 경우도 있다. 짧은 소견에도 물어봐 주시고 도움을 청하는 회원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또한 부담감도 느낀다.
초등 6학년 때 인연을 맺어 담주 수능을 준비하는 아이가 있다. 중학교 공부를 하면서 학원 시간에 짓눌려 그만두긴 했지만 그 아이는 줄곧 내게 안부를 물어왔고 스승의 날에도, 내 생일에도 인사를 해 왔다. 별그램을 통해 자주 소식도 주고받으면서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내고 있다고 깔깔거리는 모습도 내게 보여준 친근한 아이다.
딸 셋 중에 큰딸이다 보니 아이에 대한 엄마의 기대가 컸다. 동생들한테 모범을 보여야 했고 교사인 엄마의 체면도 세워야 했고 역사 교사로 있는 고모의 면도 생각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아이에겐 내심 고통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아이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해력도 깊은 아이였으나 책상 앞에만 앉으면 엄마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교과서를 낙서 하듯 연필심으로 검게 덮어버렸고 책에 구멍을 뚫기까지 했다. 저래도 가만히 둬야 하나 짧은 고민을 하던 그때 아이가 엄마는 책을 보지 않으니 괜찮다고 먼저 말해 주었다. 엄마에게는 직접적으로 불만을 내비친 적은 없다고 말하던 아이를 보며 누군가 아이의 말을 들어줘야 하는 친구가 필요함을 알았던 것이다.
책을 읽은 후 둘이서 참 많은 얘기를 했다. 주인공 얘기를 하면서 아이가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 얼굴을 익혀 공통사를 엮으며 지루하지 않게 한두 시간을 함께 했다. 엄마에게 받은 부담을 내게 털어놓은 날 나는 어머니께 조용히 문자를 남겼다. 아이는 잘하고 있으니 믿어주시면 된다고, 불만을 얘기해도 어머니가 들어주시지 않으니 그걸 힘들어한다고. 그러면서 아이에겐 나와 문자 한 내용을 모른 체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아이는 그렇게 무럭무럭 성장했다.
그렇게 그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 고등학교를 입학할 때 선물도 주고 듣기 싫은 소리일지언정 덕담도 해 주었다. 방학 때는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대개 그런 상황이면 아이들이 불편해하고 싫다고 하는데 그 아이는 먼저 내게 인사를 해 왔다. 고맙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나는 오히려 그 아이가 너무 고마웠다. 수업할 때 나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기에 내심 기뻤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넌 원래 잘해, 같은 위로와 용기를 주는 일뿐이지만 아이는 그걸 기쁘게 받아주었고 불편해하지 않았다.
다음 주면 수능을 치른다. 수능 치르기 며칠 전에는 그 아이 마음도 바쁠 것 같아 미리 선물도 건네주었다. 아이처럼 뛰어가면서 아이보다 더 반갑게 아이를 맞았다. 웃음꽃이 피었지만 아이 얼굴에는 분명 두려움도 있고 불안함도 있다. 괜찮아, 누구나 다 그래, 너도 충분히 잘할 수 있어.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란 걸 아이도 분명 알고 있다.
선생님! 수능 끝나고 술 한 잔 해요.
좋지!
선생님은 진짜 대단하세요! 멋져요!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조만간의 만남을 기대했다. 아이는 또 그새 사진을 찍어 고마운 마음을 전해왔다.
본의 아니게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낙담하고 있을 때 그 아이의 한 마디는 내게도 큰 힘을 주었다. 조금 더 정진해야겠다는 부끄러움과 함께 보름달을 보며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