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하길 바라
얼마 전 중3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가 외고를 가기 위해 자소서를 썼는데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하여 좀 봐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기꺼이 봐주겠다며 써 놓은 자소서를 톡으로 받고 나서 지금은 수업 중이라 늦은 밤에 전화하겠다고 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감사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 아이는 자존감이 높은 아이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아이인데도 혹여나 놓치거나 쓰지 않아도 되는 문장이 있을까 하여 어머니가 수정을 요구한 것이리라. 아마 아이는 혼자 해도 되는데 어머니가 보기에 내가 조금 더 도움 되지 않을까 하였던 것이리라.
아이가 혼자 쓴 자소서에 최대한 손을 대지 않으면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수업을 나가기 전 미리 읽어 두었기에 반드시 고쳐야 할 부분은 짚어놓고 늦게 집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읽어 내려갔다. 잘 쓴 글이다. 아이가 외고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선행을 했는지도 잘 알고 있어 꼭 읽어야 할 책도 서너 권 추천해 주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아이가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단다. 그렇다면 직접 통화하면서 고쳐야 할 부분을 서로 의논하면 좋겠다고, 아이가 집에 오면 내게 전화 주십사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아이의 어머니가 전화가 왔다. 방금 집에 도착했는데 학원 숙제가 있어 첨삭을 못하겠으니 담에 편하실 때 전화를 달라고 하신다. 그리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도 아닌데, 그리고 늦은 시간도 아닌데 붙잡아 첨삭을 해 주고 싶었으나 알겠다는 인사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며칠을 흘려보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 맞다. 오전에는 학교 가는 시간이라 나와 시간이 맞지 않고 저녁 시간엔 내가 일을 하느라 바쁘니 아이와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제저녁 늦게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그 아이가 생각났다. 내일 동생의 수업이 있는 날이라 얼굴을 봐야 하는데 잊고 전화하지 못한 내가 조금 미안했다. 첨삭할 내용은 이미 메모지에 적어둔 상황인데 그 사이 아이 혼자 해결했을 수도 있고 하여 괜히 끼어드는 건 아닌가 조심스럽기도 했다. 온 밤 내 미리 봐주지 못한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 떠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아이의 실력을 믿었던 것도 없지 않아 있다.
내 아이들도 스스로 자소서를 썼다. 자기 엄마가 논술 선생 한다고 좀 봐주세요, 하는 것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너무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내 아이들은 수학과 관련된 학과를 선택했기에 자소서 내용도 내가 모르는 부분들이 많았다. 섣불리 봐주고 오히려 내가 욕을 얻어먹을 수도 있겠다 했던 것이다. 다만 문맥의 흐름이나 표현법에서 고쳐야 할 것들만 고쳐 주고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한 작업만 도와주었다. 합격을 했으니 망정이지 봐주고 합격하지 못했다면 혹여라도 모를 원망이 날아오지 않을까 후환을 만들지 않아 다행한 일이었다.
그 아이의 꿈은 사학자다. 나에게서 도서관 강의도 듣고 수시로 궁금한 것을 물어오던 아이였다. 수업 태도는 물론이거니와 책을 읽어내는데도 야무지고 마음이 건강한 아이다. 다만 체력적으로 왜소해서 볼 때마다 애가 탄다. 질풍노도의 중3을 잘 마무리해서 원하는 학교에 합격해 원하는 꿈을 꼭 이루길 바라본다.
언제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