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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Jan 08. 2024

김대건 신부의 첫 착지처. 익산 나바위성당

역사의 쓸모 4


소박한 멋이 있거나 눈여겨볼 만한 것이 있는 곳은 굳이 종교적인 신념이 없더라도 나는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다. 빗장 열어 놓고 지나는 나그네의 발길을 반기는 곳이면 어디든 들르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심이 강한 불자도 아니요, 하느님 당신을 영원히 사랑한다고 맹세하는 절신한 크리스천도 아니다. 


도심에 있는 성당은 입구부터 빗장을 걸어놓은 곳도 있어서 사실 들어가기가 쉽지는 않다. 앞모습만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고 개천을 따라 걷다가 발견하는 경우도 있어서 '어머~~ 성당이네. 한 번 들어가 볼까' 하는 호기심은 사실 생기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오히려 불청객이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든 적도 있다.


그런 내가 성당을 찾는 이유는 웅장함이 느껴지는 고딕스런 성당 앞에 서면 엄숙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마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도심에 있는 것도 아니고 찾아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주니 더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선뜻 문을 열고 감히 들어가지도 못한다.  성문 앞에 가만히 서 있어도 무언가 치유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으로 족하다.


익산 나바위 성당은 화산천주교회라는 공식명칭 대신으로  불린다. 1845년  조선에서 천주교 박해가 심했을 때 스물세 살의 젊은 신부 김대건(1821~1846)이 중국 상하이에서 한국인 최초로 사제서품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처음 발을 디딘 곳이다. 박해가 심했던 그 당시에는 목숨을 건  귀향이었다. 김대건 신부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성당이 세워졌다.


박해를 피해야 했던 성당들은 아무리 크고 멋진 모습이어도 대로에서는 절대 볼 수 없듯 우리의 시선에서 비껴 서 마을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있다.  익산 나바위성당이 세워진 시기는 1907년으로 1917년에 증축을 했다.


네비를 찍어 가다가 지나쳐 다시 되돌아 들어갔던, 길 한편 돌비석에 새겨진 표식을 따라 좁은 길을 올라가면 가장 높은 언덕 나바위성지에 다다른다. 생각보다 성당 규모가 엄청 커서 놀랐다. 입구에 우뚝 선 성모 마리아상이 어서 오라 반기며 환영하듯 지나는 나그네의 발걸음을 편안히 들여보낸다. 날씨는 우중충하고 바람은 불었지만 왠지 모르게 두 손이 포개지며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무사히 내가 이곳에 도착했음을 감사했다.

나바위성당은 정면에서 보면 고딕식 벽돌 건물이지만 뒤로 돌아가면 한옥식 목조 건물과 마주한다. 동양과 서양의 아름다움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었다.


한옥 목조 건물로 지어진 나바위성당은 측면으로 돌아가면 폭이 좁고 긴 서양식 회랑이 연결된다. 좀 특이한 구조라 여겼다. 신성한 지역을 둘러싸기 위해 지어진 통로 회랑에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도 맞으며 한껏 포즈를 취했다. 이 아름다운 곳을 매일 바라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한여름 무더위로 김대건 신부의 순교지로 오르는 길은 한산하다.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걷지 않을 고행의 길이다. 아무도 없는 산속 오솔길을 걸어 예수님이 걸었을 고행의 14처를 지나며 잘 알지도 못하는 해석을 붙여보기도 했다.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받아 십자가를 지고 가다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다. 그 고행의 길을 따라 오르며 아팠던 조선의 역사를, 핍박받았던 천주교의 내면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어서  내 몸에 흐르는 전율을 몸소 감당해내야 했다. 그들의 고행으로 지켜낸 찬란한 역사를 확실히 알고 가르쳐야겠단 다짐도 하게 되었다.


고행의 길 끝에는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과  그 옆에 한옥성당과 어울리는 운치 있는 정자 망금정이 아담하게 자리 잡아 무더위에 지친 우리를 잠시 쉬어가게 한다. 화산 정상이다. 익산 나바위성당은 도심의 성당과는 다른 산을 끼고 있어서 훨씬 더 멋스럽고 신비스럽다. 망금정은 신부님이나 피정을 오신 분들이 쉬는 곳이기도 하다. 사방이 조용하니 이곳에서도  괜히 엄숙해진다. 고요하고 성스러운 기가 솟아나는 듯하다.

김대건 신부 순교탑은 1955년에 김대건 신부의 상륙 110주년과 성당 건축 5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한 탑이다. 미끄러지는 발걸음을 재차 단정히 해가며 주위를 빙 둘러보니 주변의 자연경관은 빼어나게 아름답다. 망금정 아래 흘렀던 강물은 일제가 개간해 평야로 바꿔놓았다.  멀리 앞으로 금강이 흐른다.


작년 여름, 성당을 찾았을 땐 월요일이었던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예배가 없는 날이라 성당 안을 볼 수 없었다. 신도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아 오히려 다행스러웠다고 기억한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성당이 카메라에 담기지 않아 투덜댔던 기억이 강하다. 그러고 보면 잿밥에 신경을 더 썼으니 마음을 닦는 연습을, 진리를 깨닫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성당 앞에선 그러한 탐욕도 품지 말아야 할 것을. 진리 안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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