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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Jan 10. 2024

사랑도 과하면 쓰다

과한 사랑도 받아보렴


요사이 계단 타기를 해야 다.  자의가 아니라 거의 타의에 의한 계단 타기다.  평소에도 가끔 아주 가끔씩 계탄타기를 하며 다리 알통을 두껍게 만드는데 일조했지만 요사이는 반강제로 하루에 많게는 서너 번씩 왕복으로 10층까지 오른다.  힘이 드는 것보다 구두 신기가 꺼려진다.  앞으로 꼬꾸라질까 봐 두려워 운동화 내지는 굽 낮은 신발을 신고 다닐 수밖에 없다.  30년 된 우리 아파트에 새 옷을 입힌다.  엘리베이터 교체 중이다. 세월이 흐른 만큼 연륜이 더해진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변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책을 들고 내려가야 하거나 무거운 시장 보따리를 들고 올라와야 하는 날은 아~머리가 아프다.  대신 들고 올라가 줄 건장한 이가 내 말을 제대로 안 듣고 자기 고집대로 하려 시간을 끈다.  나는 바쁘고 얼른 냉장고에 집어넣어야 하는 것도 있는데 물이 흐르든지 말든지  '좀 이따가, 좀 이따가'를 게임하듯 반복한다.  계단 타기 하는 것보다 더 열받는 일이다.  나도 그럴 땐 변신을 하고 싶다.  확 쥐어박든가, 도움 안 받는다 큰소리치는 슈퍼우먼이 되든가.  


서울살이 하는 작은 녀석이 어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긴 한데 지 알아서 한다고 건성으로 대한다.  처음으로 자기 집을 마련해 이사를 가는데 도와주고 싶어 가 볼까 물어보괜찮다 한다.   별 해주는 것도 없이 마음만 바쁘다.  이사 가는 날에 맞춰 라면 끓여 먹을 냄비라도  미리 보낼까 물어봤더니 그것도 괜찮단다.  분명  괜찮지 않을 건데 싶으면서도 지가 괜찮다니 어쩔 수 없다 여긴다. 밖에 나가면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사 먹겠지.  사 먹는 것도 귀찮으면 시켜 먹겠지. 그러다가 설마 못 먹어서 굶어 죽기야 할까.  그런가 싶다가도 마음 한편엔 짜슥~~  간단한  조리도구만 있어도 좋을 데, 후회할 건데 싶다.  



엘리베이터를 교체하는 기간에는 되도록 물건 사다 나르기를 금하고 있다. 원래 배달음식을 잘 시키지도 않고 시장도 웬만하면 직접 가서 사들고 온다.  뭐 하러 그리 힘들게 사냐고 옆에서 타박하지만 사실 쿠×에서 배달시키는 게 익숙하지 않다.  짐이 너무 많거나 무거운 날에는 후회도 한다.  그러나 다음에도 또 힘들게 시장바구니를 들고 오르내린다.  이놈의 노비 근성이 심하게 자리 잡았나 보다.  오늘은 바구니가 더 무겁다.  작은놈한테 보낼 김치를 담가야 한다.  다른 건 필요 없는데 김치는 필요한가 보다. 열무 두 단에 얼갈이  단에 내가 먹을 토마토 한 다라이까지. 계단 오르기는 힘들고 바구니는 무겁고 맘도 덩달아 살찐다.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켜 두고 김칫거리를 씻는다.  재료를 사서 씻고 조리하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 정성을 알아줄까.  뭐 어때. 알아달라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엄마니까 할 수 있는 일상인 거지. 내가 생각해도 지극 정성이다.  소금을 뿌려놓고 티브 앞에 앉았는데 괜스레 웃음이 난다.  티브이 소리는 거들뿐, 김치가 맛있을 것 같다는 느낌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오늘은 양파도 썰어 갈아 넣어 볼까 하니 군침이 저절로 돈다.  소금에 절인 열무를 뒤집어 놓으니 때깔 난다.  몇 년 사이 반찬을 해 놓을 일이 자주 없었는데 그 녀석이 나를 주방에 서 있게 해 준다.  오징어채 볶음을 해 놓고  각종 견과류 넣어 멸치를 볶아 두고 깻잎 장아찌도 한 켠에 담아둔다.  어느 정도 절인 배추의 물만 빼면 버무리는 건 시간문제다.



변신을 다.  빨간 고추색을 빨아들여 제법 맛깔스럽다. 한 손 담아 입에 넣으니 생각보다 너무 짜다. 이게 아닌데. 라면이랑 같이 먹으면 환상일 텐데 ㆍㆍㆍ. 짠 김치가 사랑을 넘어 스토커가 된 기분이다. 행여나 싶어 다시 먹어봐도 싱겁진 않다. 지나친 사랑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 줄이야 소금 뿌릴 때까진 몰랐다.   년을 해 온 나름 베테랑인데 이까짓 김치쯤이야 늘 하던 일이었는데 웬걸,  옆에 있는 남자에게 물어봐도 역시 짜단다.  계단을 타고 걸어오느라 지친 탓에 내 몸에 소금이 필요했던 탓일까.  힘이 빠진다.  무엇을 더하고 빼야 할까. 사랑이 지나쳤던 걸까. 소태 된 김치를 통에 담아 놓고 어쩌지 못해 고민하다   택배로 보내기로 한다.  


엄마에게 부탁한 사랑, 받아보렴.

짜면 좀 어때.

이것도 너를 향한 사랑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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