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가 늦다고 보챌 일이 아니다

백조 되어 날고 있을 수도

by 어린왕자


수업을 하다 보면 유독 신경이 쓰이는 아이가 있다. 팀을 이루면 팀원과 어울리지 못하고 비슷한 수준으로도 같이 수업하기가 힘든 아이는 참으로 고민이 많이 된다. 팀에서 빼고 혼자만 해야 하나, 아니면 힘들더라도 같이 데리고 이끌어야 하나 제일 큰 고민이다.


20년 전 수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어머니가 한 팀을 만들어 주셔서 남자아이들 네 명을 데리고 수업을 했다. 육 학년에서 중학교로 올라가는 아이들이었는데 모두가 친한 친구였다. 그런데 첫 수업을 해 보니 네 명 같이 이끌어가기엔 차이가 있어서 무리다 싶었다. 한 명이 책을 읽어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책을 안 읽어온다면 시간이 없어서 못 읽었거나 읽기 싫어서 안 읽어올 수가 있는데 이 아이는 육 학년 정도의 책을 읽어내지 못했다. 당연히 수업의 질은 떨어졌고 훈계가 잇따르고 옆의 아이들은 집중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어머니께 부탁을 드려도 못 읽어오는 건 매한가지였다. 조치를 취해야 했었다. 그런데 그 사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잘하는 아이가 그만두겠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걸리고 말았다. 진즉에 손을 써야 했는데, 아이들을 그만두지 않게 하려고 무리하게 끌고 갔던 것이 오히려 잘못된 일이었다.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나를 관대함 없이 질책했다.


팀에서 빼면 아이보다 혹여 어머니가 자존심 상해할까 봐 오히려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 책을 읽어오지 못해 어렵다면 단계를 낮춰야 하기 때문에 혼자서 수업을 해야 하거나 오 학년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해야 해서 아이나 어머니나 난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입장보다 아이의 입장보다 아이를 놓치기 싫어하는 나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던 것이 큰 착오였다. 그럴 땐 당연히 팀을 나눠야 한다는 것을 그때 절실히 느꼈다. 아이의 입장에 맞게 상황에 맞게 수업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 어머니께 일일이 설명을 드리고 다시 할 수 있는 아이들은 붙잡고 싶었다. 그런데 잘하는 아이들은 모두 그만두었고 책을 읽어오기 어려워하는 아이만 다시 맡게 되었다. 혼자 하는 수업이라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어머니는 대만족이셨던 것이다. 다행히 아이 집에서 수업하기로 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어 좋았다.


뼈아프게 보내야만 했던 아이들이었지만 나 또한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해 준 아이들이어서 지금은 고맙다.


그런데 이 녀석이 혼자 하다 보니 수업 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나를 힘들게 했던 때를 기억한다. 집에도 없고 전화도 받지 않고 기다려도 오지 않기에 문득 섬광처럼 스쳐간 곳, 그곳에 있을 거라 여기고 게임기 앞으로 갔더니 이놈이 가방을 던져놓고 정신없이 레버를 돌리고 있는 게 아닌가. 화도 나고 어처구니가 없어 야! 고함을 질렀더니 씩 웃어주고는 힘없이 일어서던 녀석이었다. 이런 놈을 언제까지 붙들고 책을 읽혀야 하나 미칠 지경이었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아이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었지만 그렇지만 모를 일이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 지금은 날개를 활짝 펴고 훨훨 날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늦다고 보챌 일은 아니다.

문방구 앞에서 게임하다 들킨 눈으로 나를 흠칫 바라보던 그 아이의 웃음이 스쳐 지난다. 혹 장가를 갔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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