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고 싶을 때

마지막 마음이 들리는 공중전화ㅡ이수연

by 어린왕자



몇십 번을 누른 번호였는지 모른다.
010 ㅡXXXX XXXX

이 번호는 없는 번호이며ㆍㆍㆍ
이런 목소리가 나올까 두려워 끝내 끝까지 누르지 못한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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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녀에게도 위로가 필요했고 도움이 필요했다. 누군가 잡아주길 바랐다. 왜 안 그랬을까, 그녀도 사람인데. 그녀도 그리운 부모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혼자 남겨진 그녀에게도 위로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심리부검센터를 열어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에게, 혹은 죽은 자를 위해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일, 무너지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일. 그것이 지안이가 하는 일이었다.

자살이든 아니든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난다는 건 똑같이 아프다. 괜찮다고 보내는 의뢰인에게 했던 말들이 정작 자신에게 필요했던 말이 아니었을까. 지안은 자신도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어 했다. 엄마가 떠났고 아빠만은 떠나지 않길 바랐는데 어느 날 아빠마저 떠나고 그녀에게 남은 건 아무도 없었다. 미움과 원망으로 살았지만 아빠 장례식에 만큼은 오길 바랐는데 결국 오지 않은 엄마에게 퍼붓는 원망들.

그녀가 의뢰인에게 그랬듯 그녀도 의뢰인처럼 마음의 문을 열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뒤늦게 알게 된 엄마의 진심을 통해 미움도 아픔도 조금씩 이해할 줄 알게 되고 마음의 상처를 떼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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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잃은 후에도 매번 꾹꾹 누르던 번호. 아직도 그 번호가 남아 있어 한번만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수십 번도 더 되뇌었다. 분명 다른 이의 목소리가 저쪽 너머에서 들리겠지만 그것이 엄마의 목소리이길 나는 또 얼마나 바랐던가.

심리학자 퀴블러 로스는 상실의 단계를 처음엔 그럴 리 없어하는 부정으로 시작했다가 내게 왜 이런 일이 닥치느냐는 분노로 이어졌다가 스스로 타협하는 단계를 거쳐 아무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자신을 고립 속에 빠지게 하는 우울 단계를 지나 맨 마지막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수용 단계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걸까. 아픔은 사라지지 않고 옅어진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번호,
전화를 열면 그 위에 뜨는 '엄마'라는 이름. 통화 버튼을 누르면 받을 것 같은데 그 상대가 엄마가 아닐 것이라는 사실에 두려움이 점철된 순간, 끝내 나는 그 번호를 누르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내다" 할 것 같은 떨리는 그 목소리가 분명 내가 듣고 싶은 목소리인데 지금은 그 목소리가 옅어지면서 희미해지고 만다.

누구나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청춘의 스무 해를 남들과 같이 바쁘게 살길 바랐는데 그러지 못한 사람, 그냥, 그냥 죽고만 싶었다던 그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날 한 번쯤 그에게 다가가 손이라도 잡아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일은 그만큼 따뜻하고 포근하다.


#마지막마음이들리는공중전화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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