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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Mar 05. 2024

아물지 않는 상처도 있다

상처가 상처에게


 돌부리에 걸려 철퍼덕 넘어진다. 아프다는 고통보다 남사스럽다는 고통이 더 크게 뇌리에 박힌다. 어쩌지 못한 주춤거림으로 벌떡 일어나 상처 난 가슴을 들키고 싶지 않아 애써 먼 산을 주시한다. 이 아파도 마음 아픈 부끄러움에 비할까, 바람이 살짝 외면하고 지나간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르는 바람이 어디에 꽂힐지도 모르면서 그의 가슴에 생채기를 더한다. 길 가던 그는 또 그렇게 아픈 가슴을 하나 더 가졌다. 더께가 써져 아물 줄 모르고 외려 큰 구멍으로 굳어버린다.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다. 눈에 안 보일 뿐 누구에게나 있기는 다. 다만 드러내 보일 때 크게 보이는 것이고 애써 감추려 한다면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보인다 하여도 알 리 없다. 상처인지 구멍인지. 순간의 적요가 도무지 무슨 감정인지 모르게 울컥거린다. 바라보는 이 없어도 바라보는 눈이 너무 많아 미어지는 가슴이 더 아리다. 나무 한 그루의 그림자조차 상념에서 벗어난 듯 가던 길 머무르게 한다. 이 하루의 고요가 짐작건대 그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막막함이다.  


 병원 주차장부터 가슴이 미어진다. 보슬비를 맞은 차량 사이로 눈물인 듯 빗물인 듯 흘러내린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꾸욱 눌러 담은 사람들이 오간다.  엘리베이터 한편에 붙어 서서 새어 나오는 숨 가쁜 의 숨소리를 듣는다.  아픈 사람보다 아픈 사람을 간호하는 사람이 더 아픈 법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도 돌아서고 싶은 마음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왜 모를까마는.




 젊었을 땐 젊어서 몰랐다. 돈을 벌면 버는 대로 호주머니에 넣었고 나올 줄을 몰랐다. 남들보다 풍족하게 썼고 남들만큼 살았지만 그건 어쩌면 남들은 모르는 아픔이 깃든 이었으리라. 사과 팔고 감 팔아 풍족했지만 섣불리 남 앞에 드러내놓지 않았던 건 그만이 가졌던 소외였으리라. 지금 와서 어쩌란 말인가. 어떤 거대한 산이 앞을 가로막고 섰다.


 '어쩐다고 일찍 왔노?'

병원으로 가기 전에 입으로 할 수 있었던 마지막 말을 들었던 것이다. 말을 못 하리라 전혀 생각을 못했다.  다만 상태가 조금 나빠졌다는 것만 알았을 뿐. 고층 빌딩의 층수만큼이나 아찔하고 한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낙하의 헛헛한 몸짓 같다. 이제 등 따시고 배부름을 가질 수 있는 나은 세상이 될 거라 믿은 갈망이 모래밭에 세운 누각처럼 한 번의 입김에 스르르 무너지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그도 덩달아 들뜬 어떤 희망이었을까, 아니면 떠올려봐도 간간이 후회스럽게 다가오는 그의 지난날이었을까.


 조심스레 다가가는 타인의 손을 잡으며 그는 떨고 있었다. 그러다 눈물부터 흘렸다. 살아온 지난날이 아팠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의 손은 지금 너무 아프다 말하고 있다. 흔들리는 눈동자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비는 그렇게 계속 내리고 있고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상처가 있구나. 저들도 어쩌면 아픈 가슴들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지 않는가. 어디 숨어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상처가 그들의 가슴에 꼬옥 박혀 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럽던 그의 손에도 아물지 않는 상처가 더께로 남았지 싶다. 손톱 밑에 끼인 때의 더께보다 더 깊은 고통이 눌어붙었다.




 상처 나는 일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닌데 상처라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인다. 마음 편하게 덥석 받을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다. 지나온 상처가 아물기 전에 덧입혀지는 상처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두려움보다 불만이며 그에 더해 초조를 동반한 고통의 무게까지 짓누른다. 그는 그런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다. 어쩌지 못해 감당하는 수밖에 없어 한숨으로 내뱉는다. 단지 그 상처를 어내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뿐 달리 할 게 없다.  그래서 더 아픈 상처다.


 그는 오늘도 창밖을 주시하며 섰다. 그가 바라보는 건 꽃이 아니라 꽃이 되고픈 마음이리라. 꽃아래 서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고 싶은. 손에 잡히는 건 없다 해도 사과 따며 감 땄던 그 높이만큼 발돋움해보고 싶은 간절함을 내비친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건만 꽃이 눈에 들지 않는 건 아직 그의 마음이 차가움으로 덮였기 때문이리라. 그에겐 아직 아픈 봄이다.언제쯤 이 아픔이 그리움으로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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