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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fire May 09. 2024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



진료를 보다 보면 환자분들이 내게 건네는 감사하다는 말에 위안과 보람을 받기도 하지만 때때로 위축이 될 때가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병원은 예약제로 진료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루에 여러 환자분이 진료를 오지 않으시는 날에는 나도 모르게 속이 상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오늘도 3분가량이 진료를 취소하셨다. 그래서 오늘은 진료 취소로 생긴 빈 시간들과 퇴근길에 홀로 골똘히 고민했다. 근래의 내 진료가 혹시 성의가 없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느낌을 환자분이 받게 하진 않았는지, 약 처방이 무언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도움을 받으러 온 분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겠지만, 내가 실망을 안겨드린 것은 아닌지, 나 때문에 앞으로 정신과 진료를 안 받게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염려가 되기도 한다. 기껏 도움 받으러 왔는데, 실망만 주었을까 말이다. 은근 이런 것에 영향을 받는 나 자신이, 뭔가 소개팅 에프터에 거절당한 대학생 때의 내 모습이 생각나기도 한다. 차이고 나서 나를 찬 여자친구를 걱정하는 그런 쓸 때 없는 걱정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꼬리에 꼬리를 물며 들었다.



이렇게 감정소모하지 말라고, 나를 따르는 환자만 생각하라고 주변 동료 정신과 선생님들은 내게 이야기하지만, 아직은 이런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을 보면 초짜 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이런 것에 무뎌지는 순간이 올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욕심을 내게 된다. 내가 만일 음식점을 했다면 맛없다는 리뷰에 크게 상처를 받아서 장사하기 힘들어했겠지.



차라리 이런 감정 드는 게 다행인가? 하는 마음도 들기는 한다. 나태해지거나, 공부를 안 하는 등의 모습이 생기지 않게 채찍질이 되어주는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이런 경험을 할수록 나를 돌아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위축되고 조금 속상한 것은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다. 그래도 또 새로운 환자분들이 올 것이고, 그분들이나 지금 나를 믿고 오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이런 것도 내가 좀 더 나은 진료를 보게 될 노력의 원동력으로 잘 삼아야겠지 다독여 본다. 



문뜩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난다. 의료 과실로 패혈증 등이 오시는 와중에도 내게 건네주신 따뜻했던 말이 있다. 



의사도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의사를 용서한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손자도 부족한 점이 의사로 살아가며 드러나도 절대 기죽지 말고 열심히 나아가거라.



 그때 해주셨던 그 말이 지금 참으로 힘이 된다.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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