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함께 성장하는 경험

내 외래를 꾸준히 다니시는 한 환자분이 있다. 그 분은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시는 참 상냥한 분이었는데, 때로는 선을 넘는 무례한 손님들에게도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하는 그런 분이었다. 환자분은 인간관계에도 상처가 많은 분이었지만, 자신이 받는 상처는 꽁 꽁 숨긴 채 다른 사람만을 챙기며 지내오셨다. 결국 우울과 불안이 자신에게 찾아오게 되었고 환자분은 쉽게 회복이 되지 않아, 내 외래로 오시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고 할까? 무언가 자신의 생각이나 의사를 타인에게 솔직하게 표현하기 어려워하셨다. 환자분은 자신이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은 마치 타인을 공격하는 것처럼 느끼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여러 논의 끝에 외래에서 뵐 때 마다 자기 주장 훈련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함께 다루었다. 진료에 정말 성실하고, 노력을 열심히 하셨던 환자분은 결국 조금씩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의사를 표현하고 거절도 할 수 있게 되면서 확연히 증상이 좋아지셨다. 

 

어느 날은 내게 "선생님 덕분에 너무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선생님은 정말 은인이에요~"라고 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환자분에게 내색하지 못했지만 사실 나는 그 말을 듣고 부끄럽고 위선자가 된 기분이었다. 환자분께는 진료때 마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사를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하면서, 정작 나는 그러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환자분의 변화를 직접 보면서 나는 속으로는 생각했다. “환자분은 나보다 용기 있는 분”이라고 말이다. 

 

 

환자분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어느 날과 같이 친구나 주위 사람들의 무리한 부탁에 스트레스 받아가면서도 실없이 YES라고만 이야기 하며 지냈다. 그렇게 지내오던 중 하루는 문뜩 외래에서 밝게 웃으며 "이제는 사람들을 대하는 게 편해요"라고 말씀을 주던 환자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은 나도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보았다. 상대의 요구가 불편하다 말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거절을 한 것이었다. 

 

 

환자분은 모르시겠지만, 환자분 덕분에 나도 덩달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환자분은 모르는 진실을 말씀 드리고 싶었다. 환자분이 오히려 제게는 은인라고 말이다. 한번은 용기 내서 외래에서 말씀드려볼까 싶기도 하다. 환자분 덕분에 제 삶도 한결 편해졌다고 말이다. 그리고 환자분덕분에 앞으로는 다른 환자분들께 자기 주장 훈련을 안내드릴 때, 한결 편안하게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