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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fire May 05. 2024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종종 외래로 오시는 환자 분들께서 내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선생님에게 자신은 수많은 환자 중 한 사람일 뿐이지만, 자신은 이러한 이야기를 할 곳은 여기 뿐이에요” 라는 말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냐마는, 평소 진료를 보며 뭔가 더 챙겨주고 싶다던지 자주 생각나거는 환자분들이 주로 저런 이야기를 주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신과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느끼는 감정에 주의하라고도 하고, 중립성 등에 대해 여러차례 강조한다. 그렇지만 마음이 가고, 하나라도 더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은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말할 곳이 없을 때의 그 답답함을 완전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십분 이해하고 있다. 대학생 때에도 말 못할 고민으로 심리 상담을 스스로 알아보고 받아보기도 했던 경험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누구나 그러하듯 나도 말 못한 고민으로 끙끙 앓아 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괴로워도 해봤으니 말이다. 세상에서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라던지, 자신을 조금이라도 신경써주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은 마음은 얼마나 사람으로 하여금 위축되게 하고 힘들게 할 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가 환자분에게 이러한 역할을 모두 충족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작은 손길이라도 한 번 내밀고 싶은 마음이다. 



이전부터 쉽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 있다. 진료를 볼 때 환자분을 하나의 질병이 아닌 한 사람으로써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우울증이던 무엇이던 정확한 진단과 그에 맞는 약을 사용해야 겠지만, 질병이라는 틀에서 조금 더 나아가 한 사람의 삶에 대해 바라보고 대해야지만 병도 더 빨리 좋아지고, 도움을 더 많이 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렇게 충분한 면담이 가능하도록 지금 일하는 병원의 원장님께서도 내게 여유 있는 진료시간을 보장해주시는 것이 나는 참 좋다.



그래서 사실 나는 “선생님에게 자신은 수많은 환자 중 한 사람일 뿐이지만, 자신은 이러한 이야기를 할 곳은 여기 뿐이에요” 와 같은 이야기를 주실 때면 이렇게 이야기 드리고 싶었다. 



환자분은 내게 그냥 똑같은 우울증 케이스중 하나가 아니라, XXX라는 사람으로서 보고 있기 때문에 다 한 분 한분의 이야기가 내게는 소중하다고 말이다. 



예전에 우연히 보았던 글들이 생각난다. 자세히는 아니지만 한 여자가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도 XXX의 엄마로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가지길 희망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이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삶에서 자신은 빠진 채 하나의 질병으로만 혹은 한 아이의 엄마로서만 대우 받는 것은 외로움과 같은 것이 생기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이 외에도 내가 최근에 읽은 책에서 감명 깊은 부분이 있어서 옮겨 본다. 정혜윤 작가님의 삶의 발명이라는 책인데 "삶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과 관련된 것이고 모든 생명체는 모두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언젠가 우리는 모두 이야기 속으로 사라진다"는 부분이 크게 와닿았다.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이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듣기에 피곤할 것 같다는 물음을 자주 받지만 나는 생각한다. 각자가 모두 비슷해보여도 각자가 하나 하나 가지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가 있고,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서 나는 좋다고 말이다. 



환자분들에게도 이런 내 마음이 전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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