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환자분들께 여러 장의 편지를 받아 보았었다. 환자분들이 준 편지들은 내용과 상관없이 모두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그 중 내게 소중한 메세지를 건내 준 편지를 하나 이야기하고 싶다. 환자분의 동의가 없어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편지의 내용은 요컨대 “지난 1년간 제가 말도 안 듣고 사고도 많이 일으켜 곤란하게 만들었음에도, 저를 포기하지 않고 항상 염려해주고 진료를 봐주신 것이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읽다가 환자분에게 위로를 받았던 것은 그렇게 서툰 치료자였음에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말을 건내 준 그 내용 한 구절이였다.
사실 나는 이 환자분에게 무언가 환자분의 겪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통찰력이나, 잘 맞는 적합한 약이나, 치료법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동안에 내 자신도 조금 괴로웠었다. 나보다 더 좋은 치료자를 만났으면 좀 더 나은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미안하기도 했고, 유독 차도를 보이지 않아서 여러 선생님이나 교수님들께도 자문을 구했던 분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잘 나아지지 않는 환자분을 보거나 안좋아지는 것을 보면 감정적으로 흔들릴 때가 종종 있다. 치료자의 역전이와 같은 이야기는 내려두고, 그럴 때면 나는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내가 몸 담고 있는 정신과라는 분야에 대해 괜히 의구심을 가지면서 원망의 화살을 내 전공의 치료적 발전이 부실한 탓이라며 남 탓을 하기도 했다. 오랜 기간 조금씩 쌓여 왔던 나의 실력에 대한 의구심이나 죄책감과 같은 것들은 좀 더 나로 하여금 공부를 하게 하고 노력을 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나를 지쳐가게 만들기도 하고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특히 의사라는 직업은 열심히 보다는 잘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분야라는 것도 내게 스트레스로 많이 작용했다. 열심히 해도 환자에게 좋은 혹은 적합한 치료가 아니면 그건 업무상 과실 (malpractice)이 되어 버린다. 열심히만 하는 것은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별 의미가 없다. 스포츠처럼 그 준비 과정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그런 세계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더 내 스스로가 이런 부분때문에 조금씩 위축되는 것이 있었는데, 이 편지는 환자분이 내게 그동안 내가 열심히 한 것이 또 잘하는 것이기도 했다는 그런 위로를 주는 것 같았다.
환자분들도 알까? 반대로 치료자도 환자분들로부터 치유를 받는다는 것을.
그리고 이 환자분 덕분에 힘을 얻어 다시 한번 다짐했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진료를 봐야겠다고. 결국 내게 진료를 보는 환자분들도, 내 자신도 이에 대한 빛을 보게 될 거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