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할아버지는 대학 병원에서 의료사고로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의 한 가족이면서도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러한 외할아버지의 죽음은 내게 더 혼란스럽게 다가왔다. 당시 나의 외할아버지는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신 뒤 수술 부위 감염과 같은 여러 합병증으로 인하여 명료한 의식 상태를 잘 유지하지 못하셨다. 그렇게 투병 중이셨던 외할아버지께서는 수술 부위를 여러 차례 감염을 제거하기 위한 재수술과 소독을 받으셔야 했었고 하루는 외할머니께서 나에게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드레싱 교체를 받아오라는 부탁을 하셨다.
그때는 감사하게도 잠시나만 외할아버지의 상태가 호전되어 계실 때였다. 외할아버지는 안색은 비록 무척 안 좋으셨지만 나와 함께 처치실로 가는 동안 이전처럼 여러 농담들을 던져주셨고 우린 처치 실에서 의사를 기다렸다. 곧 레지던트 한 분이 내려와 외할아버지의 드레싱을 교체해 주셨다. 드레싱 교체를 다 받고 병실로 돌아가기 전 외할아버지께서는 잠시 내게 해줄 이야기가 있다고 하시며 천천히 병실로 들어가자고 하셨다.
외할아버지의 말씀은 외할머니께서 인턴과 레지던트들에게 너무 불만을 많이 늘어놓고 계시다는 것이었다. 수술 후 병원에서 관리 미숙으로 상처부위의 재감염과 같은 여러 문제들을 겪었던 터였기에 외할머니의 신경은 몹시 날카로웠던 것이다. 이런 외할머니께 외할아버지께서는 “곧 XX(나의 이름) 이도 저렇게 인턴, 레지던트를 하게 될 것이고 실수도 하게 될 것이다. 저 인턴 레지던트들이 XX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배려하고 잘해주도록 하자. 우리가 저들을 대하는 태도가 곧 XX가 받게 될 대접이다.”라며 할머니께 조금 더 온화하게 의사들을 대해주자는 부탁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게는 "나중에 힘들더라도 너도 환자들을 볼 때 할아버지나 할머니 같은 가족이라 생각하면서 열심히 병원생활을 하고 혹시라도 실수를 하더라도 너무 기죽지 말고 고쳐나가면 되는 것이니 앞으로 의사생활에서 너무 스트레스받으며 지내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하셨다.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었을 당시 그 순간도 그러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를 떠올리면 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진다. 당시에는 전문의가 아닐지라도 가족들 중에 유일한 의사였던 나는, 그리고 타인을 잘 챙길 줄 알고 나 자신은 괜찮은 놈이라며 스스로 평가했던 나라는 놈은 사실 외할아버지가 이렇게 투병 중이심에도 불구하고 병문안도 그렇게 자주 가지 않았었다. 당연히 건강히 퇴원하시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평소에도 안부 인사, 안부 전화도 나 스스로가 한번 제대로 드린 적도 별로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내게 어떠하셨는가. 정신을 차리시기도 힘든 몸 상태이심에도 불구하고 나란 녀석을 떠올리며 걱정을 해주시고 내 앞날을 걱정해 주신 것이었다. 나 자신이 참 부족한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해외 봉사, 유기견 봉사, 의료봉사 이런 활동을 틈틈이 다닌다면서 나 자신한테 뿌듯해했는데 정작 돌이켜보니 내 식구들 하나 제대로 챙길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며칠 후 외할아버지와 나눈 이 대화는 결국 마지막 대화가 되어버렸다. 급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되시면서 돌아가시게 된 것이다. 가족 그 누구도 준비되지 않았고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어머니 곁에서 오랜 시간 함께 살아왔지만 어머니가 이토록 슬피 우시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외할아버지의 죽음은 의료사고로 인한 죽음이었기에 모두 이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 드리기 어려웠고 병원에 대한 분노는 무척이나 컸다.
자신 혹은 자신의 가족이 큰 질병에 걸렸던 경험이 있는 의사가 진정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의사 본인이 환자 혹은 환자의 가족이 되어보아야 진심으로 환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된 다는 뜻이다. 나도 이전에 의료 사고라든지 환자의 죽음을 병원에서 실습을 돌면서 혹은 기사로 여러 차례 접해왔었다. 그럴 때면 나는 내심 속으로 의사는 분명 최선을 다했을 거야, 의사에게 비난의 화살을 너무 돌리지 마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그들도 사람이야!! 라며 의사의 편을 들어주었었다. 하지만 막상 나의 가족의 일이 되니 정말 혼란스러웠다. 외할아버지께서는 그냥 운이 없으셨던 걸까? 하지만 조금만 신경을 써주었다면 사셨을 텐데 그러면 의사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담당 주치의였던 의사의 상황은 나의 외할아버지를 좀 더 신경써주기에는 불가피했었을까? 이것은 개인의 잘못인가 의료 시스템의 문제인가? 어머니와 외삼촌들 그리고 외할머니는 어떻게 내가 위로해야 하는 걸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외삼촌이 내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삼촌은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위로해 주신 것일지도 모르겠다. 외삼촌은 내게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기 힘들지만 그들도 분명 누군가의 생명을 구해냈을 것이고 안타깝지만 외할아버지의 운명은 그 목록에 들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자" 라고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의사들에 대한 분노보다는 힘들지만 이제는 외할아버지께서 좋은 곳에서 편하게 쉬고 계시기를 바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이제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전문의 자격을 가지고 개원가에서 진료까지 보고 있으니 말이다. 나의 외할아버지께서는 감사하게도 내게 상실감과 슬픔만을 남겨두고 가시지 않으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마지막 순간에도 내게 나란 사람이, 내가 지닌 직업이 가져야 할 정체성 그리고 올바른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성찰할 계기를 주고 가셨다. 학생 때에는 사실 터무니없고 그럴싸해 보이는 것들만을 마음에 품어 왔었다. 세계 평화, 거대한 부, 인류애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외할아버지 죽음을 계기로 나는 나의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내가 매일 일 상속에서 접하게 될 환자들에게 의지가 되는 도움이 되는 사람부터 되자고 계속해서 마음을 다잡고 있다.
한 번에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하는 것처럼 너무 거창하기보다는 내게 진료를 보러 오는 한분 한분 소중히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다. 한 명만이라도 성실하게, 그리고 진실되게 진료를 하여 나아지게 해 드릴 수 있게 하자고 말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외할아버지 대해서는 마음 한편에 죄송한 감정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모자란 모습을 보였던 손주를 용서해 줘야 할 외할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계시 지를 않으니 혼자서 마음의 빚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항상 사람은 어리석은 행동의 끝에만 깨달음의 이정표를 세워놓는 것일까? 그래도 내가 계속해서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않고 노력한다면 하늘에 계신 외할아버지께서도 분명 나를 보며 웃어주시리라 믿으며 글을 마친다.
사랑하는 나의 외할아버지… 요즘은 외할아버지가 제게 보여주신 따뜻함이 그리워요. 요즘의 저는 사실 지치는 순간이 많습니다. 그래도 이런 기억들이라도 있어서 제가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서 다시 한번 감사 인사 드립니다. 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