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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fire May 18. 2024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괜찮아





엉덩이가 무겁던 나는 내비게이션 예상 도착 시간과 약속시간을 딱 맞춰 나가던 때가 있었다. 내비게이션 도착 시간과 약속 시간을 딱 맞춰 출발하게 되면, 내가 사는 서울이라는 곳은 어디선가 귀신같이 수많은 차들이 등장해서는 내 앞길을 가로막고는 했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은 자신은 그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는 듯이 예상도착 시간을 한없이 뒤로 미뤄버리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여유를 부린 나 자신을 원망해보기도 하고, 애꿎은 길가의 다른 차량들을 향해 짜증을 내기도 했다. 마치 그들이 의도적으로 나를 지체시키는 듯한 느낌에 휩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을 몇 차례 경험한 이후에는 미리미리 출발하는 편이 되었지만, 도로 위 사정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때로는 갑작스러운 폭우나 도로 위 교통사고 등으로 인해 도로가 통제가 되기도 하고 정체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일찍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약속시간에 늦어지는 날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일이 내게 벌어질 때면 나는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급가속과 급브레이크를 밟고, 보다 빨리 가는 듯한 차선을 향해 차를 좌우로 이동하며 내비게이션 시간을 줄여보려 했다. 하지만 그 노력은 항상 헛되게 느껴졌다. 초조함 속에서 차선을 바꿔가며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 내 차량은 빨간 불 신호에 걸려버리고 내가 그렇게 열심히 추월했던 차는 다시 나의 옆으로 돌아오곤 했다. 야속한 내비게이션 속 예상 도착시간은 내게 조금의 희망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득, 환자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울증과 같은 병으로 자신의 삶의 계획이 뒤로 밀리면서 초조해하고 자책하는 모습들이 말이다. 그 모습은 어떤 부분에서는 지체된 도착 시간 때문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운전석 위의 내 모습과 닮아 있는 듯했다. 곰곰이 운전을 하며 환자분들을 떠올리던 나는, 약속시간에 늦어도 오히려 내가 급한 마음에 사고가 나지 않도록 차분히 안심시켜 주던 주던 어머니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나를 안심시켜 주는 어머니처럼, 환자분들께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잘 도착할 거라고 다독여드리고 싶었다. 



약속장소에 늦어 초조했던 나와 마찬가지로, 환자분들도 병으로 인해 발생한 자신의 삶 속에서 늦어진 일정에 대해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있다. 바쁘게 돌아가고 경쟁이 치열한 이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환자분들은 운전석 위에서 초조해하고 있는 나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초조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늦었더라도, 조급해하지 않아도, 지금 모습으로도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고 내 환자분들께 이야기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환자분들은 결국 회복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바라던 자신의 목표라고 해야 할까? 그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내가, 자신의 목적지에 늦었버렸다고 환자분들이 위험하게 그 길을 가지 않도록, 너무 자책하지 않도록 돕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혹시 지금 자신이 불가피하게 목적지에 늦어지게 되어 조급한 분들이 있다면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잘 도착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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