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며 여러 일들을 겪어 보았다. 환자분의 발차기에 맞아 이마가 찢어져 보기도 하는 등 나름 정말 산전수전 다 겪어 보았지만 오늘만큼 긴장한 날은 처음이었다. 이것은 오늘 점심 식사 전 마지막 진료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환자분은 벌레와 오염을 극도로 무서워하시는 분으로, 청결에 대한 강박이 있는 분이었다. 환자분과 나는 때마침 벌레에 대해 열띠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때였다… 진료실 문 밑으로 바선생님(일명 바퀴벌레)께서 들어오셨다. 내가 잘 못 본건 아닌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바선생님이 맞았다. 타이밍도 기가 막힌다. 바선생님은 귀신같이 벌레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환자분 진료 시간에 내 외래를 방문해 주신 것이다.
바선생님은 환자분 의자 밑으로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고 나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마치 “안녕? 네가 나를 무서워한다고 들었어! 이번에 노출 치료를 진행해서 함께 극복해 나가 보자!”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당황하여 말이 끊긴 나를 환자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발을 조용히 뻗어 반대로 가라며 바선생님을 향해 꼼지락 거려 보았지만 이미 녀석은 나와 환자분 사이로 다가오면서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 “저것을 말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보게 되시면 엄청 놀랄 텐데… 말씀을 드려야 하나?”라는 생각부터 “한번 저걸 보면 진료 보러 다시는 안 오실 텐데… 어쩌지?”하는 생각까지 정말 43847569가지 경우의 수를 모조리 생각해 보았다.
나는 바선생님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환자분은 정말 오랜 고민 끝에 정신과 진료를 보기 시작한 분이었기에, 바선생님을 지금 보게 되면 다시는 정신과 진료를, 그러니깐 다른 병원에서조차 받지 않으실 것만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환자분이 봐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때마침 점심시간이 지난 상태이기도 해 급하게 진료를 마무리하며 환자분을 쫓아내 듯 밖으로 모셨다.
환자분이 나간 뒤 조용히 나는 다른 직원 분을 불러 꼭 꼭 숨은 바선생님 수색을 했다. 바선생님을 발견한 나와 직원분은 조용히 바선생님을 하늘나라로 모셔드렸다. 혹시나 바선생님은 내 치료를 도우려고 오신 것일지도 모르는데, 바선생님 말도 좀 들어보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무거웠지만… 내가 계산한 43847569가지 경우의 수에서 바선생님이 도움이 되는 경우의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혹시나 환자분이 바선생님을 보셨으면 어찌 됐을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바선생님…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