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dfire May 22. 2024

내 직업은 꿈을 수집하는 일입니다.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은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 매력 중 하나는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은 꿈 수집가라는 점이다.



정신과에서 꿈이란 환자의 무의식이나 내면을 비춰주는 도구로 보기 때문에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진다. 나의 어머니는 사주나 타로, 해몽 같은 것을 좋아하셔서 이런 이야기들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게 종종 들려주곤 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해몽 등의 이야기를 자주 접해왔던 나는 정신과를 전공하면서 꿈이 알려주는 이야기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꿈에 관심이 많은 나는 두 평 남짓한 작은 진료실 안에서 때때로 환자들의 꿈을 통해 무의식을 여행하며 그들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보고는 한다. 환자들은 자신의 꿈을 통해 과거의 기억, 현재의 갈등, 미래의 불안을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그 조각들을 맞추며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이 어쩌면 끝없는 꿈의 조각들을 모으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 빠져들다 보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마치 꿈수집가와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인상 깊었던 꿈은 종종 기록해두고 있다. 동전 수집, 카드 수집 등 여러 수집들이 있지만, 나는 여러 사람들의 꿈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꿈 수집가라니, 정신과 의사란 참 매력적인 직업이다.



한 번은 젊은 여성 환자분이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은 삶에 큰 문제는 없는데, 자꾸만 우울해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반복해서 같은 꿈을 꾼다고 했다. 꿈속에서 그녀는 항상 끝이 보이지 않는 보석들로 치장된 회색의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복도의 벽에는 창문도 없고, 그녀는 복도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불안함에 사로잡혀 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녀의 꿈을 들으며 그 꿈이 그녀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구했다. 꿈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잊고 있던 어린 시절 기억들을 떠올려 내기도 했다. 어릴 적 미국 백화점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길을 잃고 헤매던 순간을 떠올리는 등 우리는 하나씩 꿈의 파편들을 모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녀의 꿈은 삶에서 길을 잃은 느낌, 방향성을 잃은 채 방황하는 자신의 감정을 상징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자신은 더 이상 부모님의 보석가게 일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자신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 한심하게 느껴진다며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것만 같아 독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이야기 주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꿈을 통해 그녀의 무의식에 닿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어머니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나에게 준 호기심이 나를 이 길로 이끈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환자들의 꿈을 듣고, 그들과 함께 그들의 내면세계를 탐험하며, 더 많은 이야기를 수집하고 싶다. 정신과 의사는 참으로 매력적인 직업이다.

이전 09화 바선생님 저한테 왜 그러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